매일신문

책/우리역사 과학기행

우리역사 과학기행/ 문중양 지음/ 도서출판 동아시아 펴냄

서구 과학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전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과학을 연구하고 생활화했을까?

우리가 모르고 지나쳤던, 혹은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첨성대, 석불사 석굴, 훈민정음, 앙부일구, 금속 활자, 거북선, 수표교, 천상열차분야지도, 혼천 시계, 천하도 등 18가지 주제를 선정해 각각의 유물들에 담긴 의미와 가치를 짚어본다.

이 책은 우리 전통 과학의 패러다임이 서구와 엄연히 다르다는 전제 하에 우리 과학 문화를 제대로 평가하고자 한다. 예컨데 첨성대는 단순히 천문대가 아니었으며, 임진왜란의 일등공신은 거북선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신비스럽고 미신적이기까지 한 원형 '천하도'를 통해서 조선 후기 지식인들의 세계관을 엿보고, 서양 천문도와 전통 천문도의 단순한 혼합에 불과했던 '혼천전도'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겨본다.

저자는 "지난 세기 수많은 우리 역사 유물들이 파괴되거나 영문도 모르는 곳으로 처박혀졌다"고 애석해한다. 개중에는 서구 열강과 일제에 의해서 수탈당하거나 파괴된 것도 있고, 근대화와 경제개발이라는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자행된 경우도 있

석불사 석굴이 대표적인 예다. 수표와 수표교는 그나마 파괴는 면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수표교는 장충단 공원으로, 수표는 홍릉의 세종대왕기념관으로 해체되었다. 청계천이 복원되면서 조선시대 홍수 통제 시스템을 구성하던 생생한 과학사의 유적인 수표와 수표교를 원형대로 복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뿐만 아니다. 세계 과학계에서 중국의 것으로 빼앗겨 버린 과학 유물도 있다. '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로 인정받는 우리의 귀중한 과학 유물인데, 중국의 것이 되고 말았다. 당나라의 측천무후 시기(690∼705년)에만 쓰이던 특이한 한자가 다라니경에 적혀 있다는 것을 근거로 "다라니경이 중국에서 인쇄되었으며, 한국에서 발견되었을 뿐"이라는 주장 때문이었다. 한·중간에 논쟁이 뜨거운 가운데, 중국과학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조지프 니덤이 '중국의 과학과 문명'에서 중국인들의 손을 들어주면서 다라니경은 더 이상 우리 것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다.

측우기도 마찬가지이다. 측우기는 세계 최초의 정량적 강우량 측정기로, 유럽 최초의 강우량 측정기인 카스텔리의 우량계(1639년)보다 무려 198년이나 앞선 세종 23년(1441년)에 발명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이러한 측우기의 발명과 사용법에 대한 자세한 역사 기록이 분명하게 적혀 있는데도, 중국 학자들은 측우기에 씌어진 연호가 청나라의 것임을 근거로 1950년대부터 중국에서 제작해 조선에 하사한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한편 영국 옥스포드대 과학사박물관에는 우리의 해시계가 버젓이 일본의 해시계로 분류되어 전시돼 있다. 앙부일구의 뒷면에 19세기 말 조선의 시계 제작 전문가 강윤이 만든 것이라고 분명히 적혀 있는데도 말이다.

역사적 상상력으로 뒤집어 본 우리 과학의 참모습. 이 책은 이공계 출신 국사학과 교수가 선뵈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이 어우러진 지식의 향연이다.

조향래기자 bulsaj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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