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후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정대리 한 산기슭. '루소의 숲'이라 불리는 이 곳에서 30여 명이 클라리넷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곡명은 '애니 로리(Annie Laurie)'.
이 숲의 주인인 김동일 대구산업대학 유아교육학과 명예교수가 선사한 음악이다. 부드러운 음악소리를 배경으로 산들바람과 새 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음악을 들은 사람들은 얼굴 가득 웃음꽃을 피운 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소나무 그늘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산을 올랐다. 곧 '양지뜸'이란 팻말이 세워진 공터(10여 평)가 눈에 들어왔다. 방문객들이 가져온 꽃을 심으라고 비워둔 공간.
저마다 모종삽을 들고 준비해온 꽃을 심었다. 흙을 다져주고 물을 뿌려주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20분쯤 지났을까. 공터는 어느새 빨강, 노랑,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일행을 안내한 윤재섭 한국여가연구소장이 부는 하모니카 소리에 맞춰 다같이 '고향의 봄'을 부르며 환하게 웃었다.
이날 숲을 방문한 일행은 대구 수성구보건소 정신보건센터에서 정신질환으로 재활치료를 받고 있는 회원들. 보건소가 마련한 '마음의 숲' 프로그램 두번째 행사에 참가했다.
이 날 행사는 회원들이 평소 자연을 접할 기회가 적을 뿐 아니라 자연과 교감, 숲이 병을 치유한 사례가 많다기에 기획된 것이다.
치료 레크리에이션을 전공한 윤 소장은 정신보건센터에 강사로 출강하면서 이들과 인연을 맺었다.
"꽃, 나무 등 자연과 가까이 하면 정서적 안정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음이온이 많이 나오는 숲은 자율신경계를 진정시켜주고 신진대사도 촉진시켜요. 숲을 보기만 해도 병이 빨리 낫는다는 말이 나온 이유입니다."
나무에 이름 지어주기 시간도 마련됐다. 곽모(31·여) 씨는 나눠 받은 이름표에 '튼튼이'라고 쓰고 아래엔 자신의 이름을 적은 뒤 소나무에 달아맸다. "아프지 않고 잘 커라고 지은 이름이에요. 날씨가 좋은데다 오랜만에 산에 오니까 기분이 들뜨네요."
아들(33)을 따라온 김모(59·여·수성구 파동) 씨는 아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한결 마음이 놓인단다.
"아들이 자살 소동만 3차례나 벌이는 등 사회생활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4년 넘게 정신보건센터에 나오다보니 이젠 남과 이야기도 곧잘 할 정도가 되긴 했지만 오늘처럼 즐거워하는 모습은 처음 보네요."
숲을 찾기 전 딱딱했던 분위기를 부드럽게 풀어준 일등공신은 역시 푸른 숲. '루소의 숲'이란 이름은 김 교수가 자신의 박사학위논문 소재였던 프랑스 사상가 루소의 이름에서 딴 것이다. 그는 행사 취지가 좋아 기꺼이 클라리넷 연주를 맡았단다.
"치료 뿐 아니라 숲에 대해 공부도 할 수 있도록 1년 전 일반인에게 개방했어요. 최대한 손을 적게 대 자연을 그대로 만끽할 수 있게 했고요. 오늘 오신 손님들이 다들 좋아하니 제 마음도 흐뭇합니다."
홍영숙 수성구 보건소 보건과장은 "숲 치료를 통해 눈에 띄게 밝아진 회원들의 모습을 확인했다."며 "수성구보건소는 앞으로 2주마다 이곳에 들러 회원들 마음 속 상처를 어루만져줄 계획"이라고 말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
이재명, 민주당 충청 경선서 88.15%로 압승…김동연 2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