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은 단순성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경우가 많다. 이를테면, 다양한 정보나 복잡한 계산을 즉각 즉각 처리하는 컴퓨터 내부의 작동 원리는 단순한 0, 1의 조합 이론에 불과하다. 인체도 생김이나 모양이 복잡다단하지만 실은 A, G, C, T 라는 네 가지 유전자 정보의 조합에 의해 다른 유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런 단순성의 측면에서 한국과 일본을 한의학적 음양이론으로 파악하면 우리는 양적인 불(火)에 가깝고 일본은 음적인 물(水)에 가깝다.
한국인이 양적인 불에 가깝다는 것은 질병을 통해서도 증명된다. 속에 불이 타오른다는 화병 또는 화증은 특정 민족에 나타나는 정신신경장애 증상으로 국제 정신의학계에 정식 등록될 정도다. 한의학적으로 화(火)는 기운을 상징하는 기(氣)가 과잉된 상태로 이해된다. 기가 충만한 우리 민족성이기에 집중력이 뛰어나고 문제 해결에 있어 핵심에 바로 접근하며 사태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이 뛰어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참을성이 부족하고 조급히 굴며 쉽게 포기하고 마는 단점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끈 히딩크 감독이 맨 먼저 배운 "빨리빨리"는 조급증에 안달인 우리 본성이 잘 드러나 있다. 월드컵 때 광화문 앞 응원은 이런 불같은 성질의 절정을 보여 준다. 직접 경기장에 참가한 것도 아니면서 백만 여의 군중이 붉은 옷으로 물결치듯이 대형 TV 화면 앞에서 '대한민국'을 외치는 모습은 불타오르듯 하는 우리의 민족성을 표출한 셈이다. 불이 외부를 향해 번져나가 커지듯이 마음에 타오르는 불길을 감당 못해 뛰쳐나와 함성 외치는 모습은 작은 들불이 산불로 커지는 광경이었다. 불은 시공을 초월하여 내재된 연료를 소모하고서야 타오르게 마련이며 한꺼번에 크게 타오르면 그 만큼 더 빨리 소진되어버리고 만다. 그래서 격렬하게 타오를수록 쉽게 사그라지는 이런 점이 우리의 냄비근성으로 나타난다.
일본의 민족성은 고요히 질서 있게 흐르는 물에 비유될 수 있다. 전철이나 버스, 공원 등에서 휴대폰 신호소리를 들어볼 수가 없는데 이는 마치 고요한 물이 고인 호수 속과 같다. 또 하나의 진풍경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줄서기다. 음식점이나 극장 매표소 등 순서를 기다리는 곳이면 어디든지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본사람들의 모습은 뒤에서 흐르는 물이 앞에 흐르는 물을 앞서지 않는 현상과 다름 아니다. 일본 역사를 통해서 보더라도 천황을 바꾸겠다는 혁명이나 신분과 계층을 뒤바꾸는 싸움 등은 찾아 볼 수 없다는 점 등이 물의 질서를 닮았다.
일제 36년의 긴 세월은 일본인의 민족성을 극명하게 반영해 준다. 유연한 식민 정책으로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듯 기미독립선언 33인 중 만해 한용운 선생 한 분 이외의 전원을 변절시키고 말았다. 격정적인 한민족의 정기를 고요히 꺾어 저항정신을 사그라뜨린 과정은 습기가 쇠를 녹슬게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슬비에 옷 한 겹 두 겹 젖듯 우리 모두를 적심으로써 친일과 항일의 경계마저 모호하게 만들어 버렸다. 우리의 불길 같은 근성을 물로써 잦아들게 만드는 지피지기의 무서운 전략이다. 얼마 전 우리를 흥분케 했던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도 마찬가지다. 소대방원(小大方圓)이란 말처럼 한 번의 승부는 운이나 기세로 결정될 수 있지만 누적된 결과는 보편적으로 결론이 나기 마련이다. 기록과 관리의 야구를 믿고 흥분하지 않으면서 냉정하게 기회를 옅본 일본은 물의 원만함을 닮았다.
신토불이여서 그런지 몰라도 인삼은 우리의 민족성과 닮았다. 속에 불꽃같은 기가 축적되어 있기에 햇볕에 노출되면 금방 시들어 버린다. 기가 충만하기에 기운을 북돋우고 활기차게 도와주지만 잘 달아오르는 부작용도 있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여 증기로 쪄서 만든 명품 홍삼은 천천히 그리고 길고 정밀하게 정신과 육체를 북돋아 준다.
지금도 갈등을 거듭하고 있는 독도영유권 문제나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한 대처도 마찬가지다. 불끈 타오르는 분노와 흥분의 감성으로가 아닌, 홍삼처럼 천천히 깊고 끈기 있는 열기로 물 같은 일본을 쪄서 말리는 이성으로의 대처가 필요한 때인 것이다.
이상곤 대구한방병원 안이비인후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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