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역사는 돌고 돌지만은 않는다

일촉즉발의 위기로 치달았던 한국과 일본의 독도분쟁이 외교부 차관급 협의를 통해 일단 봉합됐다. 그러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어 독도문제는 잠시 수면 아래로 내려간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 합의결과를 두고 제3자인 중국마저 "일본이 실리를 챙겼다."고 평가하고 있어 뒷맛이 영 개운치 않다.

'역사는 돌고 돈다'지만 독도를 둘러싼 일본의 이번 도발을 지켜보면서 닮아도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독도를 차지하려 온갖 술책을 부리는 오늘의 일본과 131년 전 군함을 앞세워 조선을 침범했던 어제의 일본이 너무나 비슷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번에 독도 부근 수역에 대한 해양 탐사를 내세웠듯 131년 전에도 일본은 마찬가지였다. 한반도 침략을 노렸던 일본은 1875년에 "항로를 측량한다."는 구실을 앞세워 군함 운양호를 동원, 강화도 앞바다를 침입했다. 우리나라 영해에서 측량을 하려면 당연히 조선 정부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했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우리 정부의 승인도 받지 않은 것은 물론 국제적 비난 여론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수역 탐사를 내세워 독도 인근 해역에 진입하려했던 지금의 일본과 판에 박은 것처럼 닮았다.

당시 군함 운양호를 동원했던 일본의 무력에 힘없는 조선은 굴복하고 말았다. 일본은 맹포격에 이어 상륙전까지 벌여 살인 ·방화 ·약탈을 자행했다. 그런데도 일본은 이 사건의 책임을 조선 측에 덮어 씌웠고, 결국 불평등한 강화도조약을 맺어 조선 침략의 첫 발을 내딛었다.

역사교과서 문제, 독도 및 동중국해 조어도(釣魚島) 분쟁 등 인근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일본의 뒤에 미국이 버티고 있다는 것도 100년 전 상황과 비슷하다는 얘기도 있다. 1905년 일본과 미국이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고 조선과 필리핀을 서로 차지한 것처럼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본이 아시아 각 국과 분쟁을 일으킨다는 게 이 주장의 요지다. 아시아에서의 패권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일본을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미국과, 그 와중에 실리를 챙기려는 일본의 의도가 서로 맞아떨어졌다는 해석이다.

아시아의 한 국가이면서, 다른 아시아 국가들을 상대로 도발을 일삼는 일본은 그러나 한가지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등이 1세기 전과는 전혀 다른 나라라는 것이다. 1세기 전 조선과 청(淸)은 힘이 없어 치욕을 당했지만 지금의 대한민국과 중국은 '계속 당하지만은 않을' 힘을 갖고 있다. 일본이 의도한 것처럼 역사는 마냥 돌고 돌기보단, 어떨 땐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전개된다는 섭리를 일본이 하루빨리 깨닫기를 바란다.

이대현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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