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뜬다. 텔레비전에서 파편적인 이미지들이 흘러나오고 우리의 기억공간에 투영된다. 하루 종일 이미지 이미지 이미지에서 헤어나지 못하다가 잠이 든다. 그리고 그 이미지들은 실재(實在)가 되어 사유와 인식의 기초가 된다.
이미지는 시간적인 거리와 공간적인 거리를 극복하게 해주기도 한다. 사진기를 통한 알타미라 동굴 벽화 이미지는 지금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의 사건들은 이미지로 가공되어 시시각각 우리의 시선을 끌어들인다.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비슷한 인식을 하게 되는 것도 재생산된 이미지를 통해서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미지는 통일적인 상(像)을 갖게 하여 보다 객관적인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
그러나 이미지 과잉시대에는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이미지가 지나치게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되면 본질을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재생산된 시각으로서 이미지는 '대상의 유일무이성으로부터 오는 아우라(aura)'가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대상의 개별성이나 독창성도 매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량복제된 이미지를 통해서는 획일적이고 비개성적인 인식만이 확산된다.
또 이미지는 매우 정치적이다. 많은 경우에 개인적 목적 달성을 위하여 이미지는 조작되고 편집된다. 특히 선거철만 되면 숱한 이미지 속에 개인의 실체는 감춰지고 은폐된다. 80년대만 하더라도 생소하던 이미지 조작이 이제는 너무나 보편화되어 후보들의 이미지만 둥둥 떠다니는 형국이고 개인의 실체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여당의 서울 시장 후보가 보라색 전략으로 나오고 있다 해서 설왕설래다. 특정 컬러를 통한 이미지 알리기가 가장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고급스러운 느낌에 심리적 안정감을 주지만 웬만한 사람으로서는 소화하기 어렵다는 보라색을 들고 나온 것에 대하여 갖가지 해석과 추측이 뒤따르고 있다. 어쩌면 과잉해석들이다. 보라색 패션과 보라색 분위기를 연출하는 순간부터 그 보라색은 이미 그 후보와 등가(等價)인 의미를 새롭게 생산할 뿐이다. 왜 보라색을 들고 나왔는가에 대해서보다는 보라색을 들고 나온 그가 어떤 정책적 비전과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서야 그의 정책과 견해는 비로소 보라색 옷을 입게 되고 텅 빈 보라색 기호가 꽉 채워지게 될 것이다.
이미지 과잉시대에 우리는 그 이미지로 인하여 우리 삶이 식민화되고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 부유(浮游)하는 이미지는 언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고 인식을 고정시켜버릴지 모른다. 이미지 속에 은폐된 사물의 실체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지 소비자로서의 자격을 스스로 되물어봐야 한다.
오창우
계명대학교 미디어영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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