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천사표 달걀 왔습니다"…이종규 씨의 '이웃 사랑'

"달걀 왔습니다."

대구 달서구 월성동 월성사회복지관. 이 곳엔 매달 두번씩 '주문 않은' 달걀이 어김없이 배달된다. 한번에 5판씩, 한달이면 10판의 달걀이 복지관 냉장고로 들어간다. 매달 두번씩 들어오는 '공짜 달걀의 역사'는 10년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달걀 역사'를 쓰는 사람은 이종규(46·대구 서구 평리동) 씨. '돈많은 독지가? 어깨 힘 주는 사람?' 복지관 사람들은 10여 년 전 첫 배달이 왔을 당시, 다들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 씨는 그냥 새벽부터 1t트럭을 몰고 달걀을 파는 행상. 종일 파김치 되도록 달걀을 팔아야 한달에 쥐는 돈은 고작 150여만 원.

사람들은 그를 '영세상인'이라고 부르지만 이 씨는 "마음만은 부자"라고 했다. 그래서 그는 부자로서의 도리를 해야 한다며 공짜 달걀 배달을 시작한 것.

"꼭 15년전이네요. 친구 권유로 이웃을 돕는 '일일 호프행사'에 갔어요. '적은 돈이지만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돕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몇푼 못 번다고 내 것만 생각하던 제가 부끄러웠습니다."

넉넉찮은 살림이니 이웃에 줄 것이 없었다. 그래서 이웃에 대한 선물은 당연히 트럭에 실린 달걀이 됐다. 매일 조금씩 달걀 몇 알을 모은다는 생각으로 한달에 20여 판을 마련, 월성종합복지관을 비롯, 화성양로원, 아동복지시설인 회천원에 달걀배달이 시작됐다.

그는 '나눔의 삶'을 시작하며 유일한 낙인 담배도 끊었다. 달걀 말고 돈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는데 현금이 없었던 탓. 금연으로 1주일에 1만 원 가량 모았고 현금 보내기도 가능했다.

그는 매달 홀몸 노인과 소년소녀 가장에게 20만 원을 보낸다. 주저하는 마음을 없애려 아예 자동이체를 신청해 놨다.

'마음만은 부자'라는 그도 '없는 놈이 별 짓 다한다'는 주위 시선을 완전히 털어낼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산다.

해가 지면 달걀 장사를 끝내고 아내와 함께 막창 가게(대구 서구 평리동) 문을 연다. 밤 늦게까지 장사를 해야 한다. 그래도 그는 요즘 기분이 좋다. 그가 운영하는 막창가게 단골 손님들도 주인을 닮아가기 때문.

막창 가게 한쪽에 둔 성금 모금함에 손님들의 정성이 차곡차곡 모이고 있다. 매일신문이 수요일마다 싣는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과 관련, 이 씨는 올들어서만 막창집 성금함을 털어 벌써 2번이나 10여만 원씩을 보내왔다.

"어르신들이 달걀 때문에 밥 드시러 오신다고 하시고 제가 주는 '푼돈'이 고맙다고 대문 열고 들어가면 맨발로 뛰쳐나오는 아이들을 보면 이 일을 멈출 수 없습니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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