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낙화암에 진 꿈을 찾아서…백제의 고도 부여를 거닐다

잊힌 왕국, 백·제. 백제의 고도(古都)를 찾아 부여로 가는 길은 설렘과 기대가 교차한다. 어떻게 하면 백제의 향기를 가슴에 담아올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기대와 달리 부여에선 자칫 실망하기 쉽다. 망국의 한일까. 부여는 신라의 왕도 경주와 딴판이다. 경주가 화려한 관광도시라면 부여는 아직 소박하고 아담하다. 경주시내엔 발길 가는 곳마다 유적지이건만 이곳은 답사물조차 많지 않은 편. 그래도 마음으로 느낀다면 백제의 속살을 들여다보기에 부족함이 없다.

부여에서 백제의 혼과 맥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유적은 부소산성과 정림사지, 궁남지 등 세 곳. 세 곳 모두 산책로가 잘 갖춰져 있다는 것도 큰 장점. 천천히 거닐며 백제를 느낄 수 있다.

◆백제를 거닌다-산성에서

부여답사 1번지는 부소산성. 부여읍내에 있는 부소산 정상과 능선을 따라 2.5㎞가량 흙으로 쌓아올린 토성이다. 백제 왕조 마지막 120년간의 수도였던 사비의 외곽성이다. 하지만 산성이라기보다 잘 닦여진 산책로라는 느낌이 강하다. 시민들은 이 산책로를 따라, 토성을 따라 운동 겸 산책을 즐긴다. 사실 능선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산책로는 백제로 들어가는 역사의 통로다. 성이라고 하기엔 앙증맞은 토성과 영일루, 반월루, 군창지, 서북사지 등 유적지가 곳곳에 있다.

산책길의 끝은 낙화암과 고란사. 낙화암은 나라 잃은 슬픔을 껴안고 강에 몸을 던졌던 궁녀들의 넋이 어린 곳이라기엔 너무 아름다운 곳이다. 백마강을 끼고 탁 트인 경치에 빠져 자칫 역사를 잊어버릴 수도 있겠다. 아래쪽의 고란사는 절 뒤쪽 암벽에 자라고 있는 고란초에서 유래됐다. 이곳에선 절 뒤쪽 고란약수를 꼭 맛보고 와야 한다. 약수 한잔을 마시면 3년씩 젊어진다는 전설이 있다.

◆백제를 거닌다-절터에서

정림사지는 부여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절터다. 부여읍내 중심부에 있으며 부소산성에서 걸어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다.

정림사지는 남쪽에서부터 연못, 남문, 탑, 금당, 강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백제형식의 절. 하지만 정림사라는 이름은 백제시대의 것이 아니다. 백제 때 불 탄 절을 고려 때 재건하고 정림사라 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백제와 고려가 공존하는 절인 셈.

이곳엔 국보 제9호인 정림사지5층석탑이 있다. 부여에선 백제탑이라는 이 탑을 제대로 된 백제유물로 친다. 백제가 멸망해 간 애절한 사연을 묻은 채 1천400년을 버티어 왔다. 이 탑의 1층 탑신에는 당나라 장수 소정방이 백제를 멸망시킨 다음 썼다는 승전 공적이 새겨져 있어 또 다른 역사의 아픔을 알려준다. 이런 아픔과는 달리 백제탑에 걸린 저녁노을은 부여8경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답다.

절터에는 고려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좌상(보물 제108호)이 남아있다.

◆백제를 거닌다-연못에서

백제는 '연못의 나라'였다. 그 가운데서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연못이 궁남지. 궁궐의 남쪽에 있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일본서기(日本書紀)'에도 이 궁남지의 조경 기술이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었다고 전한다.

궁남지엔 향가 '서동요'의 주인공 백제 무왕의 탄생설화가 서려있다. 연못가에 살던 한 여인이 용신(龍神·왕)의 아들을 얻었는데 이 아이가 신라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와 결혼한 서동이다. 서동은 법왕의 뒤를 이어 무왕이 되었다.

연못 한가운데에 섬을 만들고 정자를 세웠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주변에 늘어선 버드나무. 물속으로 그림자가 드리워진 버드나무와 섬을 연결한 다리가 그림 같은 풍경이다. 현재의 크기는 약 1만 평. 예전엔 10만여 평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5월이면 곳곳에 핀 야생화를 감상하며 백제 속을 거닐 수 있다.

글·사진=박운석기자 dolbbi@msnet.co.kr

▶가는 길(대구 기준)

경부고속도로-대전 직전 비룡분기점(판암 방향)-대전남부순환고속도로-서대전분기점(계룡·광주방향)-호남고속도로-논산분기점(연무 방향)-천안~논산간 고속도로-서논산IC-부여. 부여에 가까워지면 '부소산성' 등 이정표가 잘 되어 있다. 부소산성에서 정림사지까지는 걸어서 5분일 정도로 가깝다. 궁남지도 이정표를 따르면 가깝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서동요 촬영장'도 들러볼 만하다. 4번 국도를 따라 서천방향으로 가다가 홍산면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간다. 부여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 대구로 돌아오는 도중엔 논산의 관촉사에 들러 은진미륵을 보고와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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