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흥행대박은 계속된다"…'분단영화'의 진화

"철책은 그대로지만 스크린은 진화한다?"

쉬리-JSA-실미도-태극기 휘날리며-웰컴 투 동막골로 이어지는 한국영화 흥행대작 계보.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개봉하자마자 관객들을 영화관으로 끌어들였고 그해 최고의 흥행을 기록한 영화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간첩 리철진', '동해물과 백두산이', '간 큰 가족'에 이어 지난해 150억 원의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해 탄생한 '태풍'까지 넣는다면? 정답은 모두 남북 분단을 소재로 다뤘다는 점.

영화 '쉬리'이후 남북 분단은 한국 영화의 중요한 소재로, 또 흥행 코드로 스크린을 점령해 왔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5월 4일 개봉하는 '국경의 남쪽'을 시작으로 7월에는 한국 영화의 흥행사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가 그 계보를 이을 예정.

◇국경의 남쪽

드라마 '장미와 콩나물', '현정아 사랑해'의 연출자 안판석 PD의 스크린 진출작이다. 차승원이 주연을 맡은 멜로 영화다. 사랑하는 여인을 북에 두고 홀로 남쪽으로 넘어온 남자의 얘기다.

차승원은 "분단을 소재로 한 영화 가운데 상당수가 군인 위주의 대결만 강조해 왔다."며 "'국경의 남쪽'은 사상과 이념의 대립이 아닌 분단 상황에서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고 소개했다. 분단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바라보는 방식에서는 차별성을 두고 있다.

북쪽에 애인 연화(조이진)를 두고 홀로 남으로 넘어와야 했던 선호(차승원)는 애인의 결혼 소식을 듣고 남쪽 여인 경주(심혜진)와 결혼한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인지 연화가 오직 선호를 보기 위해 목숨을 걸고 남으로 내려온다. 영화는 남북한 연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선호가 낯선 남한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을 웃음과 감동으로 풀어냈다.

총 제작비 70억 원 중 20억 원 이상을 평양시내 세트 재현에 투입하며 영화를 완성했다. 전북 전주와 대전 정부청사 앞 광장, 서울 한강 둔치 등을 활용 평양 대극장, 김일성 광장, 옥류관, 보통강 유원지 등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

◇분단영화의 흥행성

최근 한국 영화의 관객 동원력은 놀라울 정도. 100만~200만 명 관객 동원으로는 흥행작 대열에 감히 이름을 올릴 수 없다. 관객 1천만 명 시대. 한국 영화가 이런 힘을 갖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한국 영화사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영화 한 편. 1999년 개봉한 '쉬리'다. 620만 명의 관객 동원. 당시 한국 영화사의 한 획을 긋는 혁명과도 같은 성과였다.

'쉬리'로부터 시작된 분단 소재 영화는 연이어 홈런을 날렸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는 2004년 차례로 1천만 관객을 모으며 국민영화로 떠올랐다. 2000년의 '공동경비구역 JSA'는 580만 명을, 2005년 '웰컴 투 동막골'은 최단기 300만 명을 돌파하며 모두 800만 명을 극장으로 불러들였다.

세계 유일의 분단 국가. 민족의 아픈 현실이 유독 스크린에서 힘을 발휘하며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가 된 점은 아이러니하다. 이런 영화들은 한석규, 최민식, 장동건, 원빈, 안성기, 설경구, 신하균, 정재영, 이병헌, 송강호, 이영애 등 톱스타 배우들을 내세우며 분단과 통일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유도하며 세대를 아우르는 힘을 과시해 왔다.

◇반공에서 화합까지

스크린은 분단을 어떻게 그려 왔을까. '쉬리'가 등장할 때만 해도 영화에서 남북의 분단 현실을 다루는 것은 민감한 문제였다. 쉬리에 나타난 북한은 우리에게 친근하기보다는 위협을 가해 오는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됐다. 잔인하고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절대악으로 묘사한 60, 70년대 반공영화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수 공작원의 이야기를 담은 '간첩 리철진'(99년)은 뻣뻣한 북한의 이미지를 부드럽게 한 최초의 영화가 됐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남북정상회담 등 달라진 사회 분위기는 북한을 같은 민족이자 대화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확산시켰다.

'공동경비구역 JSA'는 결국 분단 현실의 장벽 안에서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며 적대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끝을 맺지만 영화는 남북한의 군인들이 대중의 시선을 피해 서로의 초소 안에서 웃고 떠들며 즐기는 모습을 통해 남북은 적대가 아닌 가까운 친구, 형제라는 동질성을 그려냈다. '실미도'(2003년)는 베일에 싸여 있던 북파 간첩의 모습을 조명해 사회적 이슈화에 성공했고 '태극기 휘날리며'(2004년)는 한국전쟁의 비극적 상황에 형제애를 녹여내 감동을 전해줬다.

'천군'(2005년)은 남북한 병사가 힘을 합해 핵폭탄의 위험을 막아낸다는 설정을, '간 큰 가족'(2005년)은 아버지의 유산을 물려받기 위한 엽기 패밀리의 간 큰 통일 사기극을 소재로 활용했다. '웰컴 투 동막골'(2005년)에 와서는 1950년 한국전쟁을 배경으로 국군, 인민군, 연합군이 포화가 닿지 않는 두메산골 동막골에서 화합하는 진한 휴머니즘을 전파했다. 오는 7월 개봉하는 '한반도'는 통일을 앞둔 가까운 미래의 한국을 무대로 1세기 이상 숨겨졌던 수수께끼를 파헤치며 일본의 침략 야욕으로 인한 위기를 극복한다는 내용을 담을 예정.

반공이라는 통제된 문화정책에서 벗어나면서 남북 문제는 영화를 통해 현실을 앞서가고 진보하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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