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야당연합이 19일간 계속된 총파업을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야권은 또 제1야당인 네팔의회당의 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 당수를 차기 총리에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로써 갸넨드라 국왕의 친위 쿠데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14개월 이상 혼미양상을 거듭해 온 네팔 정국이 빠른 속도로 정상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국토의 절반 정도를 점령한 상태에서 야권과 느슨한 동맹관계를 형성해온 공산반군은 국왕의 발표가 "왕정을 유지하기 위한 음모"라며 거부 의사를 분명히함으로써 향후 정국에 불확실성의 여지를 남겼다.
인도 자와할랄 네루 대학의 S.D.무니(서남아 정치학) 교수는 "하나의 전쟁은 끝났지만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로 네팔 사태가 완전히 종료된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피플파워'의 승리' = 갸넨드라 국왕이 4년째 공백상태인 의회를 복원하겠다2차 양보안을 제시한데 대해 7개 정당으로 구성된 야당연합은 25일 오전 막후협상을열어 총파업을 공식 종료하기로 합의했다.
야당연합은 또 신정부가 구성되는대로 공산반군과의 휴전을 선언한 뒤 정국의안정적 운영을 위해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하기로 했다.
야당연합의 파업종료 선언은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 구성이라는 자신들의핵심 요구사항이 수용된 덕분으로 보인다.
수도 카트만두의 순환도로에서는 수만명의 군중들이 모여 "민주주의여 영원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승리의 감격을 누렸고 야권도 공원에서 '승리 축하연'을 갖고3주째 계속됐던 총파업을 결산했다.
일부 시위대는 왕궁으로 진입을 시도하기도 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당했고, 승리의 감격에 젖은 탓인지 물리적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진보 성향의 현지 일간 카트만두 포스트는 "피플 파워는 승리한다"는 1면 머리기사에서 이번 민주화 운동의 과정과 의미를 소상하게 다뤘다.
야권이 지난 6일부터 총파업에 나선 이후 네팔에서는 시위대와 보안군의 유혈충돌로 14명이 사망하고 수천명이 부상했다.
◇향후 정치일정 = 야권은 총리를 3차례 역임한 네팔의회당의 코이랄라 당수를차기 총리에 만장일치로 추대하고 이를 국왕측에 통보했다.
네팔의회당은 지난 2002년 5월 하원이 해산되기 직전 총 205석 가운데 113석을차지하고 있었던 최대 정당이었으며 지금은 분당돼 있는 상태다. 코이랄라의 신정부가 선거를 통해 제헌의회를 구성해 헌법을 개정하면 국왕이명목상의 지위로 격하되면서 왕권이 사실상 백지화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입헌군주제 자체가 폐지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는 국민들의 희망사항일 뿐 갸넨드라는 전날 연설에서 제헌의회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고 단지 "야권의 로드맵을 따르겠다"며 다소 모호하게 넘어갔기때문에 이 문제가 새로운 돌출변수로 작용할 여지도 있다.
앞서 갸넨드라 국왕은 대국민 담화문에서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위로를 표시한뒤 "2002년 5월22일 해산한 하원을 복원하겠다"며 "하원 회기가 오는 28일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1일의 성명에서 행정권만 이양하고 다른 권리는 계속 유지하겠다던 갸넨드라가 한발자국 더 물러난 것은 자신의 1차 양보안이 국민들을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역부족이란 점을 분명히 인식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인도를 비롯한 국제사회 역시 희생자에 대한 사과와 의회복원 등 야권의 요구사항을 들어줄 것을 거듭 촉구하면서 갸넨드라를 압박했다.
◇남아있는 불씨 = 공산반군이 국왕의 양보안에 거부 방침을 분명히 했다는 것은 향후 네팔 정국에서 새로운 분쟁의 불씨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반군은 이날 최고 지도자인 프라찬드라와 2인자인 바부람 바타라이의 명의로 발표한 성명에서 "국왕의 발표는 정권을 수호하기 위한 음모"라고 규정했다.
이들은 나아가 "야권은 우리를 배반했고 이는 실수"라고 지적하면서 수도권으로향하는 도로를 차단함으로써 생필품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만들었던 봉쇄령을계속 유지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네팔의회당의 크리슈나 시타울라 대변인은 "반군과 휴전협정을 맺은 뒤 긴밀한협조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말했지만 야권으로서도 이들을 무마하고 주류 정치권으로끌어들일 복안은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크리슈나 라잔 카트만두 주재 전 인도 대사는 "현재로서는 공산반군이 폭력을포기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면서 "그들을 주류 정치권에 합류시키려면 아주 고통스런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론가들은 왕권의 현저한 제한이 가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신정부와 공산반군의마찰이 계속될 경우 반군에 대한 대처 미흡을 이유로 정부를 해산했던 갸넨드라의쿠데타가 재현될 여지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이날 카트만두에서는 이동통신 서비스가 재개된 가운데 모든 가게가 문을 열고 시민들이 거리청소에 나서는 등 일상생활이 빠른 속도로 정상화를 되찾고 있다는 전언이다.
◇국제사회 반응 = 미국은 갸넨드라 국왕의 의회복원 약속을 환영하면서도 그에게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 '상징적 존재'로 복귀하라고 요구했다.
미 국무부의 애덤 어럴리 부대변인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그가 지금 권력을정당들에 넘겨주고 자신은 국가 통치상 의례적인 역할만 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며조건없는 하야를 촉구했다.
반면 인접국인 인도와 중국은 "정치적 화해와 사회 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국왕의 긍정적 노력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뉴델리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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