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 농 득 마잉(65) 유임

농 득 마잉(65) 현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앞으로 5년동안 당과 국가를 통치할 베트남의 최고지도자 자리를 다시 맡았다.

제10차 공산당 전당대회는 대회 마지막날인 25일 하노이 바딩홀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농 득 마잉 현 서기장이 유임됐다고 발표했다.

폐막을 하루 앞둔 24일 오후 새로 선출된 160명의 당 중앙집행위원들의 투표 결과 마잉 서기장은 90% 이상의 높은 지지를 얻어 유임됐다고 당 관계자는 밝혔다.

마잉 서기장과 함께 서기장 선거에 나섰던 응웬 밍 찌엣(64)은 중도에 경선을포기해 마잉이 단독으로 최종투표에 나섰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지난 2001년 제9차 전당대회에서 국가 최고직에 오른 마잉 서기장은 대회 직전 불거진 강력한 ODA(공적지원자금) 자금 유용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유임돼 2010 년까지 베트남의 고속성장을 맡을 기관사 역할을 하게됐다.

외교 국방을 담당할 당서열 2위의 주석은 막판까지 이름이 오르지 않았던 레 홍아잉(56) 공안부 장관이 내정됐고 서열 3위의 총리는 예상대로 응웬 떤 중(56) 현 수석 부총리가 맡았다.

주석이 유력했던 찌엣은 막판 국회의장을 선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석과 총리,국회의장은 당 전당대회에서 사실상 뽑지만 형식상으로는 국회에서최종 선출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중국과의 접경지역에 있는 북부 박깐성 출신인 마잉서기장은 소수민족 중의 하나인 따이족 출신으로 소수민족으로는 처음으로 당의 요직을 맡는 인물이 됐다.

본인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베트남의 민족적 영웅인 호찌민의 아들이라는 소문이나돌고있는 마잉 서기장은 대회 직전 사위가 ODA자금 유용사건에 휘말려 퇴진압력까지 받았으나 지난 5년동안 베트남을 세계에서 몇번째 드는 고도성장(연평균 7.5%) 을 이루게 한 업적과 당을 이끌어 오던 주요 지도자 그룹 5인 중 그를 제외한 4명이일시에 은퇴를 선언함에따라 업무의 연속성 등을 고려해 유임된 것으로 보인다.

임업기술자로 91년 7차대회에서 정치국원으로 발탁된 뒤 2001년 당서기장이 됐다.

온화한 성격으로 실리추구형이나 급속한 경제성장을 추진하는데는 약하다는 평가도 나오고있다.

이번 전당대회에서 당서열 2,3위의 주석과 총리가 모두 남부 끼엔장성 출신의49년생 동갑내기라는 점은 매우 특이할 만하다.

남부 끼엔장성 출신의 아잉 주석 내정자는 끼엔장성 서기를 지낸뒤 97년 중앙당에 진출했고 2002년 8월 레 밍 헝 전 공안부장관의 사망으로 공안부 장관이 됐다. 그의 막판 주석직 발탁은 최근 불거진 부패 스캔들을 당이 의욕적으로 척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인것으로 분석된다.

끼엔장 성 출신은 아니지만 인근 까머우성에서 태어나 끼엔장성에서 지방당료생활을 한 응웬 떤 중 수석 부총리는 2001년 당대회에서부터 총리 설이 나돌 정도로베트남의 경제통이다.

이들 끼엔장성 출신의 두 동갑내기는 앞으로 5년간 베트남의 성장과 개혁을 함께 이끌것으로 기대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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