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딸아 용기를 내!"…스티븐 존슨 증후군 임민수양

햇볕이 들지 않는 대구 한 종합병원 격리실. 병실 밖 세상엔 따스한 봄 햇살이 가득하지만 이곳에 머물고 있는 민수(3·여·북구 칠성동)에겐 딴 세상의 이야기일 뿐이다. 형광등도 켤 수 없다. 피부가 약해질 대로 약해진 탓에 빛을 피해야 한다.

민수의 얼굴은 울긋불긋하다. 화상을 입은 것처럼 짓무르면서 벗겨졌던 피부에서 새살이 돋아나는 중이기 때문. 몸 다른 곳에도 새살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 양발은 붕대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발등, 발바닥 할 것 없이 온통 물집이 잡히고 피부가 벗겨진 탓이다.

민수가 앓고 있는 병은 스티븐 존슨 증후군. 피부이상 증세 뿐 아니라 고열, 두통이 동반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희귀병이다. 퇴원은 기약할 수 없지만 증세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런 일.

이달 초 40℃를 웃도는 고열이 계속돼 병원을 찾을 무렵엔 피부가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눈도 보이지 않았고 귀도 들리지 않았다. 코에는 염증이 가득했고, 입 안이 헐어 먹지도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민수 아버지 임장희(가명·42) 씨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수두를 앓는 줄로만 알았는데 의사의 말을 듣든 순간 머리가 텅 비어버렸어요. 아이 할머니와 3일 밤낮을 민수 옆에 붙어있었습니다. 미라처럼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있는 아이를 보니 눈물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더군요."

가뜩이나 어려운 가계에 먹구름이 끼었다. 운영하던 학원은 이미 2년 전 문을 닫았고 개인과외교사 생활로 손에 쥐는 돈은 월 100만 원 남짓. 친척에게 사정해 병원비 500만 원을 빌렸다. 부끄러웠지만 아이를 살릴 수 있다면 못할 일도 아니었다.

"우울증이 심했던 아내와 합의이혼한 데다 사업에 실패한 남동생 빚까지 떠안았는데 아이까지 아프니 눈앞이 캄캄해지더군요. 그래도 남에게 손 안 벌리고 살 만 했는데….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 버렸나 싶어 혼자 많이 울었습니다."

임 씨는 며칠 전 세 들어 사는 방 두 칸 모두 벽지를 갈았다. 민수가 아픈 것도 지저분하고 초라한 주위 환경 탓인 것 같아서다. 슬레이트 지붕을 인 채 40년이 훌쩍 넘은 집. 집 전체를 손대고 싶지만 여유가 없었다. 인건비를 아끼려고 민수 할머니와 임 씨가 번갈아 벽지를 발랐단다.

하지만 민수가 언제 새로 도배한 집에 갈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병원에선 언제 상태가 악화될지, 어떤 합병증이 올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민수의 피부 상태가 좀 더 회복되면 코, 귀, 눈에 이상이 없는지도 검사를 해야 한다. 이제껏 나온 병원비가 어림잡아 1천만 원이 훌쩍 넘어 부담스럽지만 민수가 쉽사리 퇴원을 할 수 없는 이유다.

임 씨는 민수 얼굴을 볼 면목이 없다. 형편이 어려워 돌잔치를 챙겨주지 못한 것도 미안하고 대신 아파주지 못하는 것도, 빨리 낫게 해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다.

"벗겨진 피부에 감아놓은 붕대를 갈거나 약을 바를 때도 신음소리만 내지 울지 않습니다. 그 나이에도 못난 아빠가 걱정할까봐 그러나 봐요. 살아 있어주는 것만 해도 고마운데 아직 어린 녀석이 계속 절 미안하게 만듭니다."

지금 가진 것은 몸뚱이 하나와 가족뿐이라는 임 씨. 민수가 퇴원할 정도로만 호전된다면 자신은 아직 젊으니 얼마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거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어제 민수가 환자복을 입었습니다. 병원에 온 뒤 처음으로요. 여태까진 짓무른 피부 때문에 옷조차 입힐 수 없었지요. 병원에선 민수가 잘 버텨내고 있다고 합니다. 민수가 힘을 내니 우리도 힘을 내야하지 않겠습니까."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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