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을까? 시커멓게 찌푸린 채 후두둑 빗방울을 뿌리던 하늘이 거짓말같이 갠다. '그래, 하늘도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하지않았나! 모처럼 나들이를 망쳐서는 안되지.'
아이들의 손을 잡은 채 대가야박물관을 꼼꼼히 둘러보는 표정들이 진지하다못해 엄숙하다. 손정미(30·여) 학예사의 자세한 설명에 모두 귀를 쫑긋 세운다. 이동연(42·여) 씨는 한 마디라도 놓칠세라 받아적기에 바쁘다. 아이들은 말 탄 기마상에, 엄마들은 왕관에 관심이 쏠린다. 어쩔 수 없는 법.
바쁜 일정 탓에 왕릉전시관을 미처 둘러보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개실마을로 향하는 버스 안에는 꼬르륵 꼬르륵 소리가 난리다. 모두들 아침 겸 점심을 들고 나온 탓일 게다. 마침 마을에서 처음 마련한 체험도 엿만들기. 꼴딱 꼴딱, 절로 군침이 넘어간다.
빨리 만들어 보겠다며 혼자서 낑낑대던 김종옥(37) 씨는 마을부녀회 박옥순·김숙자 할머니의 도움을 받고 나서야 겨우 한숨을 내쉰다. "사람은 역시 배워야합니다. 갈색이던 엿이 하얗게 변하는 게 신기하기만 하네요."
김소현 대연 유민 3남매는 온통 얼굴에 허옇게 분칠을 한 채 까르르. 메이크업 한 번 제대로다. 엿가락 제일 끝부분은 '아들 낳는 엿'이라며 박 할머니가 김진향(35) 씨에게 권하자 '딸딸이 아빠'인 이수학(39) 씨도 조른다.
삶은 우엉잎과 쑥국, 된장찌개로 '보약 밥상'을 챙긴 뒤 마을 앞 배꼽마당에서는 잔치가 벌어졌다. 가족 레크리에이션으로 몸을 푼 뒤라 사물놀이를 따라하는 몸짓들이 가볍다. 모두들 덩실덩실 흔들흔들 어깨춤을 추는 동안 이영림(9·여)이는 꽹과리에 푹 빠졌다. "얘, 너 혹시 국악 배우니? 아주 잘 하는구나. 타고난 소질이 있는 것 같아." 칭찬에 힘이 난 듯 꽹과리 소리는 더욱 신명나게 밤하늘에 울려퍼진다.
구운 돌 위에 고구마를 넣고 거적을 덮은 뒤 물을 뿌려 익혀내는 '삼굿놀이'는 신기하기만 하다. 구운 게 아니어서 먹기에도 좋다. 오붓하게 둘만의 추억을 쌓으러 온 김인국(46) 예린(17) 부녀도 모닥불 옆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한 입 가득 미소를 짓는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난 뒤 오른 화개산에서는 마을 앞 문필봉, 좌랑봉이 한뼘 거리처럼 가까워보인다. 옛날 산적들이 보물을 묻어뒀다는 도적굴 앞에선 모두들 '로또'를 꿈꾸는 표정들. 고향이 성주라는 김점득 씨는 단연 어린이들로부터 인기다. 버드나무 가지로 만든 버들피리는 모두를 마법에 빠지게 한다. "삘리리 삘리리." 난생 처음 보는 악기에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까지 신이 난다.
점필재 선생의 종손 김병식(68) 할아버지와 이경태(48) 마을부녀회 총무의 도움을 받아 만드는 짚 계란꾸러미 만들기도 인기. 아이들 시험때문에 아침 일찍 식사도 거른 채 대구를 다녀온 박창진(48) 씨네 가족은 점심상을 받아놓고서도 새끼를 꼬는라 식사는 아예 뒷전이다. "짚으로 이런 것 만들 줄 아는 아이들이 요즘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 것이 모두 사라지기전에 지켜야할텐데..."
대구로 돌아오기 전 들른 무농약 딸기밭에선 모두들 욕심을 한 가득 부린다. 조그만 플라스틱 케이스 위에 딸기가 산처럼 쌓였다.
농장주인 김병만(64) 씨도 오늘만큼은 여유롭기 그지없다. "그래 많이 먹고 많이 가져가. 대신 수입 농산물은 안 사먹겠다고 약속해. 농촌이 살아야 도시도 함께 사는 거 아니겠어."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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