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조급증

사람들이 쫓기고 있다. 잘못을 하고 도망을 치는 상황도 아닌데, 무엇이든 하루 아침에 사생결단을 내려고 공연히 조급증을 내고 있다. 로또 한장으로 인생을 역전시키려는 속셈들로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천성이 여자들은 꽃을 좋아하고, 남자들은 나무를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여자라고 다 꽃심기를 좋아하고, 남자라고 다 나무 가꾸기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름다운 꿈을 가진 사람만이 꽃을 심고 나무를 가꿀 것이다.

철마다 꽃을 심어 가꾸고, 한 두해 유실수를 조금 심었다고 그것이 바로 물질적인 풍요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누군가는 이 땅과 후손들을 위해 꽃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어야 하는 것이다.

삶은 하루만 살고 접는 유희가 아니기 때문이다. 삶은 낯선 길을 차근차근 물어가며 걸어가며 인생의 목표를 찾아가는 것이다. 급격한 정보화가 사람들의 심리를 조급하게 만들어 버렸는지 모르겠으나, 자기 일을 하는 사람이든 남의 일을 하는 사람이든 모든 사람들이 단숨에 생의 행로를 어떻게 해 보겠다는 생각들로 제정신이 아니다. 진득한 구석이란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일까. 민선자치가 시작된 이후, 작든 크든 한 지역의 장이 된 사람들은 그 짧은 재임 기간 동안 무엇이든 내가 했다는 가시적인 치적 만들기에 급급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검토평가 받지 못한 사업들을 일시에 시작함으로써, 수없이 시행착오를 반복하고, 거창한 치적들은 곧 졸적이 되어, 법정에서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하는 세태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푼돈을 모아서 자갈밭을 사는 사람, 그 자갈밭을 개간해 옥토를 만드는 사람, 그 옥토에 정성껏 유실수를 심고 가꾸는 사람, 그리고 풍성하게 과일을 수확하는 사람이 꼭 한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인데, 조급증에 발목이 잡힌 사람들은 기어이 자기가 북치고 장구까지 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이다.

학창시절, 교과서를 통해 한국인의 특성은 '은근과 끈기'라는 말을 배운적이 있다. 지금 그 말을 생각해보면 모두가 거짓말이 아닌가 싶다. 이렇게 조급증에 걸린 환자들이 도처에 산재해 있으니 말이다.

무엇이든 하루 아침에 다 이룰 수는 없는 것이다. 조급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귀가 얇은 사람들이다. 귀가 얇은 사람들은 스스로 나약하기 때문이다. 인생은 마라톤과 같은 것이다. 단거리 달리기는 누구나 뛸 수 있는 운동이지만, 마라톤은 충분히 계획된 훈련과 준비없이는 뛸 수 없다. 조급함을 버리는 순간 우리 모두는 좀더 행복할 것이다.

김환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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