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사꽃 내음 짙은 이곳은 소읍/먼 나라에서 온 외톨이가 되어/거리를 휘청대다가/봄 햇살에 취해서 새싹 향기에 들떠서/다시 버스에 올라 잊어버리고/내가 무엇을 찾아 헤맸는가를/쥐어보면 빈 손, 잊어버리고, 내가/어디로 가고 있는지 어디서 내릴지도.(신경림 봄날 중 일부)
꽃 피고 새 울어 환장할 봄날, 시인은 변방에서 서성댑니다. 슬픈 뒷그림자입니다. 흐드러진 꽃 시절의 역설은 예나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의 문사 서거정은 물었습니다 "봄 시름 봄 흥취 어느 것이 깊고 얕은고"(春愁春興誰深淺). 봄날의 시름을 겨워하고 있습니다. 시름의 절창은 일장춘몽(一場春夢)입니다. 생은 한바탕 봄날의 꿈, 부귀영화는 꿈속의 일. 아득한 덧없음이고 부질없음입니다. 시답잖은 감상 쪼가리가 아닙니다. 하늘 아래 이치가 그러하거늘, 가졌다고, 누린다고 천년만년 갈 것 같이 날뛰지 말라는 잠언입니다. 뒤집어 곱씹으면, 힘들더라도, 막막하더라도, 또는 참기 어려운 어떤 분원도, 그 모두 잠시 잠깐일 뿐 영원하지 않다는 위로이지요. 우주적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누군들 모를 리 없습니다. 다만 깜박하고 삽니다. 잘나갈 때는 눈멀고 푸르른 나이에는 실감하지 못합니다. 어리석음을 일깨우는 일화는 수없습니다. 다윗의 반지도 그 하나입니다. 골리앗을 거꾸러뜨린 그 다윗입니다. 이스라엘을 40년이나 통치한 다윗은 어느 날 보석 세공사에게 반지 제작을 명합니다. 그는 승리했다고 교만하지 않고 수렁에 빠졌다고 낙담하지 않을 글귀를 반지에 새겨 스스로를 경계하고자 했습니다. 세공사를 대신해 지혜로운 아들 솔로몬이 글귀를 지어 바쳤습니다. -'이것 또한 곧 지나가리라.'
그랬던 솔로몬도 스스로는 흐려졌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못 따를 부귀권세를 누린 솔로몬이 곁에 둔 여자가 천 명이었습니다. 나중에야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고 가슴을 쳤습니다. 솔로몬의 유명한 참회의 고백입니다.
이 봄날, 선거가 한창입니다. 저마다 잘났다고 우기고 있습니다. 서로 속입니다. 상대를 밟아야 사는 냉혹한 제로섬게임이니 어쩔 수 없다 하겠지요. 한 달 뒤면 저 흙먼지 자욱한 싸움이 결판납니다. 물러나는 사람도 있고 개선가를 부르며 자리로 되돌아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누가 기쁨에 취해 기고만장하며, 누가 이를 갈며 슬피 울 건가요.
누구보다 자리를 떠나는 사람들은 생각이 많을 것입니다. 이미 권력 금단의 쓴맛을 느끼며 기운이 빠진 단체장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 어쩌겠습니까, 자신의 시대는 지나고 만 것을. 도리 없이 인정해야지요. 임기가 끝났든, 선거에 졌든 단호하게 짐을 싸야 합니다. 퇴임 이후에도 영향력을 쥐어보겠다고 머리를 굴리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어떤 단체장은 마지막까지 자기 사람을 심는 떨이 인사파티를 했다고 들립니다. 어느 단체장은 충성 맹세한 사람을 후임자로 앉히려고 별짓을 다하고 있다네요. 어떤 단체장은 퇴임 후 자리 물색에 정신이 없다고 합니다. 이 모두 권력의 속성을 모르는 말년의 착시현상입니다. 권력의 시제(時制)는 현재형입니다. 흐르는 물과 같습니다. 부자간에도 나눌 수 없는 게 권력의 생리입니다.
떠나는 자는 성찰할 때입니다. 베푼 생각만 꽉 차, 옛 부하직원이 여전히 몸을 낮출 것이라 믿으면 오산입니다. 자신이 행한 수많은 결정에서 얼마나 숱한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는지 아직은 잘 모를 것입니다. 그 상처와 원망은 재임기간이 오래일수록 더 많이 쌓였다고 보면 틀리지 않습니다. 그걸 모른 채 권력의 향수에 젖어서는 화병을 얻기 십상입니다. 그만둘 때를 기다린 반대자들이, 앞에서 주억거리고 뒤로 호박씨 깐 사람들이 씹기 시작한 것은 이미 오래 전입니다.
이제 곧 당선의 영광을 안을 사람에게도 권력은 화려한 앞면만 보일 것입니다. 이미 후보 시절부터 굽혀 드는 행렬에 붕 떠 있겠지요. 그렇더라도 한 번씩 옷깃을 여밀 줄 알아야 합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갑니다.
김성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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