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소한의 삶 보장 '사회안전망' 개선 시급하다

1. 최근 우리나라를 방문한'현대판 비너스' 앨리슨 래퍼. 바다표범처럼 짧은 다리와 두 팔이 없다고 해서 이름 지어진 '해표지증'을 안고 태어난 그녀는 생후 6주만에 부모에게 버림받아 보호시설에서 성장했다.

그러나 불운에 굴하지 않은 래퍼는 구족화가, 사진작가로 정열적으로 활동 중이며 아들을 낳아 건강하게 키우고 있다. 한국을 찾은 래퍼는 "영국정부의 정책지원으로 내가 이처럼 일할 수 있다."고 했다. 3년 전 영국에선 일하고 싶어하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법이 만들어졌다는 것. 또 일할 수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서도 물리치료와 활동보조인 지원 서비스 등이 마련돼 있고, 양육비 지원 제도도 있다고 래퍼는 덧붙였다.

#2. 지난 21일 동대구역 선로의 군용 장갑차 위에서 놀다 감전돼 숨진 박모(10) 군. 태어난 지 고작 100일만에 엄마, 아빠가 교도소로 가는 바람에 박 군에겐 고모가 전부였다. 기초생활수급자인 고모와 단둘이 살던 아이는 고모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일 하느라 하루 종일 혼자서 지냈다.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 박 군은 친구가 거의 없었고 밤늦게까지 길거리를 배회했다. 부모의 따뜻한 사랑이나 사회적 배려도 받지 못한 아이는 짧은 생을 마감해야 했다.

이들 두사람의 삶이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 데는 영국과 우리의 사회 안전망 차이도 크게 작용했다. 비교적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갖춘 영국에서 래퍼는 장애인임에도 꿋꿋하게 삶을 개척해온 반면 박 군은 허술한 사회안전망으로 외로움과 가난에 시달리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다.

◆"선진국과 비교조차 힘들다."= 사회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란 노령·질병·실업·산업재해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국내서는 1997년 말 외환위기로 실업자 수가 급증하면서 사회안전망에 대한 논의가 일기 시작한뒤 이를 위한 작업이 본격화됐다.

현재 국내 사회안전망은 크게 1차(사회보험), 2차(공적부조)로 나눌 수 있다. 사회보험으로는 99년 국민연금이 전 국민으로 확대된데 이어 2000년에 건강보험 365일로 급여확대, 고용보험 1인이상 사업장 확대(99년), 산재보험 1인이상 사업장 확대(2000년) 등을 들 수 있다. 공적 부조로는 국민기초 생활보장제 도입(2000년), 의료급여 차상위 계층으로 확대(18세 미만·2005년), 취약계층에 대한 사회복지서비스 확대 등이 꼽히고 있다.

그러나 1, 2차 사회안전망에도 불구하고 산업구조의 급격한 개편, 노동시장 유연화, 소득양극화현상 등으로 안전망에 '다수의 사각지대'가 발생하는 만큼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실제 몇 가지 지표만 보더라도 국내 사회안전망 수준은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65세 이상 노인기준 요양시설 서비스 수급률 및 재가 서비스률이 우리는 각각 1%에도 못미치는 반면 일본은 3~5% 수준, 다른 OECD 국가들은 5~9% 수준까지 이르러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육아비용 정부부담률에서도 한국이 38%인 데 비해 일본은 60%, 스웨덴은 88%에 달하는 실정.

국가의 재정지출 중 복지지출 면에서도 우리는 밑바닥 수준. 2001년 OECD평균 GDP대비 복지지출규모는 21.2%이나 우리는 6.1%에 불과하다. 스웨덴(28.9%), 프랑스(28.5%)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일본(16.9%)과도 3배 차이가 난다.

◆"사회안전망 튼튼하게 만들어야."= 지난 달 24일부터 시행한 긴급복지지원제도. 대구시 경우 지금까지 114가구(224명)가 혜택을 받고 있다. 이 제도시행으로 가장이 사망하거나 화재가 발생하는 등 갑자기 생계를 유지하기 곤란해 졌을 때 각 구·군으로부터 한 달간 생계비와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소득과 재산, 부양의무자 등을 먼저 조사한 후 일정 기준에 충족할 경우에 지원했기 때문에 위기발생시 신속하게 대처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 제도를 통해 어려운 사람을 조기에 발견, 우선 지원함으로써 빈곤으로 인한 생계형 사고를 예방하는 등 현장중심의 신속한 복지서비스 전달체계가 어느 정도 가능해 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인이 긴급지원이 필요하거나 어려운 이웃이 있을 때에는 전국 어디서나 129번을 누르면 365일 24시간 긴급지원 상담과 아울러 지원요청 접수를 받게 되며 아울러 구·군의 사회복지 관련부서에 직접 지원요청을 할 수도 있다.

신속한 복지서비스 제공을 위한 체계 구축도 시급한 과제. 이를 위해 10개 이상 개별적으로 개통·운영되던 보건복지관련 전화번호를 129로 하나로 통합해 운영하고 있다. 전국 어디서나 129로 위기가정 신고 및 보건복지 상담을 요청하면 신속하게 필요한 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

정부는 사회복지전달체계 개편에도 힘을 쏟아 오는 7월 1일부터 대구 달서구를 비롯해 전국 50개 시·군·구에서 시범실시할 예정이다. 시·군·구 본청의 주민생활지원 조직을 통합하고, 읍·면·동사무소를 주민 생활지원 기능중심으로 개편하며 고용안정센터, 교육청, 보건소 등 공공기관관 연계체계 구축을 골자로 하고 있다.

박태영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 정부가 나름대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 복지 인프라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사회안전망이라는 용어가 계속 사람들 입에서 오르내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장애인, 노인, 아동 등 어느 특정 분야를 벗어나 가족·지역 등 그들이 생활하는 환경을 일정 단위로 묶어 지원하는 방안이 보다 실질적인 복지를 구현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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