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작은 행복 가꾸기

사랑하는 이여. 안녕! 늘 함께 하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또 경상도 남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인사도 못하는 사람이라오. 가정과 직장에서 바쁘게 생활하는 당신을 보며 늘 수고한다, 고맙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내가 뭔가 도와주려고 하니 그게 잘 안 되었어요.

내가 뭘 어떻게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또 내가 어떤 일을 했을 때의 당신의 반응이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리고 내 속에 있는 약간의 악동성이 자꾸만 일을 뒤틀리게 만들고 있어요. 그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위하고 싶은 만큼 위하는 정도의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네요.

사랑하는 이여. 지난 시간동안 큰아이 때문에 마음 졸이고 늘 걱정하던 것.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들어갔어도 원하는 공부를 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에 새로운 기회의 시간을 주자 고민할 때 우리는 둘 다 동참하였지요.

하지만 아이가 예상과는 달리 방황의 세월을 보낼 때 당신은 아이 곁에 있는 당신의 탓이라 하였어요. 하지만 그것은 우리 아이의 심지가 굳지 못해서이지 당신의 탓이 아니었다오. 그리고 당신이 이제 그만 포기하자고 했을 때 나는 그 아이들을 앉히고서 장래 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의논했으며 그리고는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자 고집하였지요.

물론 그 후, 아이는 또 다른 고통 속에 빠져 다시 흔들렸다오. 도움의 말은 할 수 있어도 그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기에 가슴 아파하는 당신을 보며 나 또한 아팠다오. 지금은 그래도 어엿한 대학생이 되어 나름대로의 자부심을 가지는 아이를 볼 때 마다 그 동안 당신의 마음고생이 느껴지는 듯하다오.

늦게까지 공부하다가 들어오던 아이가 이제는 늦게까지 친구들 혹은 선배들을 만나 술을 마시며 떠들다가 들어오고 있어도 뭐라고 말하지 않고 그저 이쁘기만 하다는 당신, 학부모 설명회에 갈 때 당신이 보이던 자신감, 혹은 자만심을 보며, 그 정도의 자만심은 부려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큰 아이는 이제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으니 당신도 이제 그만하면 되었다오. 당신이 늘 자랑하는 둘째는 큰 문제가 없이 자신의 길을 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어려서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지만 또래의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자신의 일을 스스로 잘 알아서 하는 둘째를 보면 그저 마음이 편안하다오.

물론 직장에 다니는 당신에게 둘째를 낳자고 했을 때 당신은 선뜻 찬성을 하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동안 겪은 우리들의 파란만장했던 삶을 정리하는 의미라고 했을 때 당신은 동의를 했어요. 그 아이를 키우는 일 때문에 고생한 것들을 생각하면, 지금 와서 말이지만, 무척 힘겨웠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어요.

잠도 덜 깬 아이를 외가집에 데려다 주고 출근하던 일, 모임이 있는 날은 퇴근하자 먼저 그 아이를 집에 데려 오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일. 간난 아이를 기를 나이가 훨씬 넘어 한 고생이었지만 어느새 지금은 추억이 되었다오.

이제는 그 아이가 어엿한 중학생이 되었구료. 여러 아이들 틈에서 그래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아이가 되어 반장도 척척 잘 해내는 모습이 더욱 믿음을 주는 구료. 이것은 모두 당신 덕분이라는 생각이라오. 아무것도 없는 힘든 시기에 나에게 시집을 와서, 아니 나와 결혼을 해서 이만큼의 가정을 이루어 놓았으니 이것은 모두 당신의 부지런함 덕분이지 무엇이겠소.

웬만해선 잘 아프지도 않고, 아파도 드러눕는 일이 없던 당신이 요즈음 와서는 자주 아파하는 모습을 보여서 두렵다오. 이제는 자신의 건강을 돌볼 때가 되었어요. 당신의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다 할 것이오..

그러니 당신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우리가 이룬 작은 행복을 계속 유지하고 싶은 마음이라오. 그러니 사랑하는 이여! 이 작은 행복을 가꾸기 위한 정성을 함께 기울입시다. 안녕.

서정윤(시인·영신고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