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을 살아가는 3040세대는 처음으로 선거하는 시대에 태어나서 자란 세대들이다. 지난날에는 알림판도 없어서, 후보자들의 화보를 그냥 담벼락에 덧붙이곤 했다. 지난 대통령 후보자 사진에 국회의원 후보를, 지난 선거구호와 공약 위에 새 후보들의 구호와 공약을 덧붙이곤 했다. 그런 담벼락은 대체로 햇살이 잘 드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 밑에서 구슬이나 딱지치기를 하며 자랐다. 그렇게 수많은 후보들의 구호와 공약을 보면서 놀았지만, 기억에 남는 선거구호는 하나뿐이다. "배고파 못살겠다. 죽기 전에 살 길 찾자!"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시대의 가장 절박한 상황에 정곡을 찌른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리라. 배불리 먹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노력만 한다면 이제는 배고파 못살겠다는 시절은 지나간 것 같다.
또다시 2006년 총선이 다가오고 있다. 모든 선거진영은 공약개발을 위해, 선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 있을 것이다. 권력에의 길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후보자는 늘어만 가고, 투표율은 해가 갈수록 떨어지는가? 그것은 권력이 가지고 있는 특성 때문인가?
그렇다면 권력은 우선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권력은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런데 그냥 좋아하는 것을 찾기는 쉽지만, 가장 좋아하는 것을 찾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가장 좋은 것을 찾으려면, 가장 싫어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그러면 그 반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될 것이다.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은 남의 종처럼 사는 일이다. 돈이 많건 적건, 남의 존경을 받건 무시당하건, 학식이 많건 적건 간에 사람이라면 누구나 남의 종처럼 사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인간은 자유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쳐왔다. 그렇다면 인간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자유일까? 그렇지 않다. 사람의 심리는 묘하기 때문일까? 사람이 현실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종처럼 부리는 것이다. 즉 남의 종처럼 사는 것의 정반대는 남을 종처럼 부리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것을 남에게는 휘두르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역설적 심리에서 권력은 발생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비롯되는 권력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력은 무엇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이요, 가능성이다. 권력은 모든 사람을 잘살도록 하는데 사용되거나, 아니면 못살게 구는데 사용된다. 권력은 아직 이루지지 않은 것의 실현 가능성을 위해 주어지는 힘이다. 결국 나쁜 권력자는 시민에게 절망을 안겨줄 것이고, 좋은 권력자는 희망을 줄 것이다. 따라서 자유사회에서의 선거란 권력과 희망의 교환이요, 공정한 거래이지 않으면 안된다.
유권자가 사기를 당하면, 권력을 주고 절망을 받게 된다. 그래서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유권자는 족집게 투표를 해야 한다. 그렇다면 희망을 돌려줄 후보자를 어떻게 찾아내는가? 보이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다. 희망이 바로 이런 것이다. 희망이 진정한 희망으로 존재한다면, 그 희망은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이어야 한다. 눈에 빤히 보이거나 선거 때마다 나오는 뻔한 헛소리는 희망이 될 수 없다.
후보자가 사기를 당하지 않으려면, 유권자에게 정곡을 찌르는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즉 자신의 희망을 위해 권력구조의 윗선에 아부하거나 거래하기 보다는, 유권자들의 희망을 구체적으로 작성해야 권력과 바꿀 수 있다. 정확한 희망은 적어도 절망의 깊이 보다 높아야 한다. 지금 유권자의 희망을 찾으려면, 먼저 어디서 절망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래서 절망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은 정확한 치수의 희망을 제시해야 한다.
남부럽지 않게 자란 오늘의 젊은이는 어디에 절망하고 있는가? 배고픔을 안고 자란 중장년층은 지금은 어디에 절망하고 있는가? 우리들의 배를 골리면서도 우선 교육을 시켜야 했던 지금의 노년층은 무엇에 절망하고 있는가? 이 시대의 절망을 넘어설 희망에 대한 정확한 깊이, 색깔, 크기, 절박함을 잴 수 없는 자는 감히 권력을 달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유권자의 희망을 모르는 후보자는 권력을 받고 절망을 안겨줄 사기꾼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3040세대들의 아버지, 어머니들은 높은 투표율을 보인다. 어려운 시절에 희망을 안고 투표하던 습관과 가속도 때문일 것이다. 요즘 젊을수록 투표에 무관심한 것은 눈감아도 보이는 희망을 어떤 정치지도자도 주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후보자들이여, 한 표를 요구하기 전에 먼저 희망을 보여주시렵니까?
신창석 (대구가톨릭대학교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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