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서정주는 '가난은 한갓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시 '무등을 보며'를 통해 노래했다. 삶의 남루에도 불구하고 인간됨의 위엄은 훼손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셈이다. 시인 백석도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내린다'며,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을 위무했다. 하지만 가난은 그 상황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에게 과연 비극이 아닐 수 있을까?
쪊아무래도 그렇지 못한 것 같다. 황금만능주의가 팽배하고 있는 오늘의 사회에서는 가난이 '무능의 증거'로 치부되기도 하지 않는가. 더구나 가치나 지향을 넘어 일부 진보적 지식인들조차 가난을 '악의 상징'으로까지 규정하는 경우를 봐야 할 정도이니…. 아무튼 산 체험으로서의 가난은 혹독함에 다름 아니며, 그런 상황을 뛰어넘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절규와 함께 강림한 비극'이 아닐 수 없는 세상이다.
쪊우리나라의 최상위 계층과 최하위 계층의 소득 격차가 50배에 이르는 등 계층 간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03년을 기준으로 최상위 가구의 연간 총소득은 9천208만 원이나 최하위 가구는 186만 원이다. 게다가 최상위 계층 가구 소득이 전체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는 반면 반대편 소득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
쪊최상위 가구의 소득이 천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0년에는 30.6%였다. 그러나 2001년 31.3%, 2002년 31.4%였으며, 2003년엔 31.7%로 높아졌다. 최하위 계층은 2001년 0.7%에서 점차 하락해 왔으며, 가구 총소득 중위 소득의 50% 이하인 계층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 빈곤율'도 2000년 20.2%, 2001년 20.8%, 2002년 21.0%에서 2003년엔 22.5%로 높아져 소득 분배 구조가 점점 악화하고 있음을 말해 준다.
쪊사교육비에는 하위 65.8%, 상위 64.9%가 부담을 느끼고 있으나 이 부문에서도 양극화 현상은 뚜렷하다. 하위는 월 평균 8만 7천 원, 상위는 29만 4천 원으로 3.4배나 차이가 난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경쟁 조건의 평등성, 분배 구조의 형평성 문제다. 열심히 노력하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을 때 가난은 인간됨의 위엄을 훼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저소득층에 대한 다양한 지원책이 요구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은가.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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