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커버스토리] 맹모는 실험실로…대가대 '와이즈 맘 아카데미'

"와! 나온다, 나와!"

지난 달 29일 오후 5시 대구가톨릭대 과학관 4층의 한 실험실. 허브를 썰어 넣고 펄펄 끓인 물이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유리관을 통해 한 방울 두 방울 떨어지자 엄마들의 환호성이 터진다. 막대 온도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20분이나 기다린 참이었다.

"진짜 향이 나네", "이게 여기서 끓어 올라서 기체가 됐다가 냉각기를 거치면서 다시 액체가 된 거야", "아, 그렇구나". 여고를 졸업하고 오랜만에 돌아온 실험실에서 엄마들의 눈이 반짝 반짝 빛난다.

'와이즈 맘(WISE MOM) 실험 아카데미'를 참관했다. 와이즈 맘 아카데미는 대구가톨릭대 부설 '대구.경북 와이즈 센터'에서 초교생과 엄마들을 위해 개설한 과학·수학 교실. 지난 3월 중순 문을 연 이 곳에는 현재 각각 28명의 엄마와 아이들이 매월 한 차례씩 실험도 하고 대학교수·연구원들로부터 강의도 듣고 있다.

김주영 센터장(대구가톨릭대 수학과 교수)은 "여기서는 영재교육은 하지 않아요. 평범한 엄마와 아이들이 즐겁게 실험하면서 창의력도 키우고 '아, 과학·수학이 어려운 게 아니구나.' 하고 눈을 뜨도록 돕는 거지요."라고 설명했다.

이날 엄마들이 한 과학 수업은 오렌지, 레몬 껍질, 허브 줄기 등을 알코올이나 물에 넣어 끓인 뒤 천연향을 얻어내는 것. 증류 실험을 통해 기화-액화의 원리를 배워보는 것이었다.

가깝지 않은 거리를 아이와 함께 달려온 열성 엄마들인만큼 교실에서 느껴지는 열기는 대단했다. 5개월 된 아기를 업고 온 젊은 엄마도 있었다. 실험에 앞서 진행된 수학강의. 최소한의 색으로 지도를 칠해보면서 '오일러의 공식'을 배우는 시간에는 교수님 말을 한 마디라도 놓칠까 다들 열심이었다.

화학을 전공했다는 임은경(35.달서구 용산동) 씨는 지난 1년 동안 화산·지층실험 등 교과서에 나오는 실험도 해보고 직접 리트머스 종이를 만들어 아이들과 산성비 실험을 해 보기도 했다. 임 씨는 "엄마들끼리 하다 보니 교재 연구에 어려움도 많았는데, 와이즈 맘에선 매주 숙제를 통해 수업관리까지 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김수경(36.달서구 장기동) 씨는 "문화센터나 사설 학원의 과학 수업보다 훨씬 알차고, 무엇보다 대학 강의실에서 교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운다는 것에 아이들이 뿌듯해 한다."고 흡족해 했다.

같은 시간. 옆 교실에서는 얇은 실험용 장갑을 낀 아이들이 '야광팔찌 만들기' 수업에 한창이었다. 가느다란 유리관을 구부려 환한 빛이 쏟아지자 아이들의 눈이 동그래지며 '와!'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김은정 연구원은 "과산화수소와 디페닐옥살레이트의 화학적 반응에 의해 빛이 발산되는 야광의 원리를 배우는 것"이라며 "아이들의 흥미를 돋구기 위해 반딧불이의 생물발광과 비교해가며 가르치고 있다."고 했다. 야광막대를 허공에 흔들며 글자를 쓰는 시늉을 하던 양인혜(칠성초교4년) 양은 "그 동안 엄마하고 한 실험중에서 '춤추는 동전' 실험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말했다.

엄마들은 학교 수업에서도 아이들의 창의성을 기르는데 관심을 더 가져줬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초교 3학년생 딸을 둔 한 어머니의 말. "'다음 중 움직임이 없는 것을 고르시요.' 라는 시험문제가 있었대요. 1번 펄쩍 펄쩍 뛰는 개구리, 2번 둥실 둥실 뜬 구름, 이런 식이었는데 아이가 '피어나는 꽃 봉우리'를 정답으로 해 놓고 왜 자기가 틀렸냐며 묻더라구요. 최소한 학교에서 아이들의 호기심이나 창의성을 꺾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요."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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