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이 구속됐다. 법원은 "증거 인멸 우려가 있고 횡령 및 배임 액수가 거액인데다 피해가 관련 회사와 주주들에게 귀속됐기 때문에 실형 선고가 예상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현대차그룹의 비자금 조성, 불법 상속 등에 대한 검찰 수사는 정 회장 구속으로 이어지면서 상당 기간 논란을 불러왔다. 대립 논리도 '경제정의론'과 '경제위기론'으로 분명히 갈라진다. 게다가 여기에는 단순히 재벌 오너 구속에 대한 논란 외에 기업 지배구조의 문제와 글로벌 경쟁력이라는 중요한 논쟁거리도 담겨 있다.
대입 논술이나 심층면접의 소재로 활용되기 더없이 좋은 사안인 만큼 학생들은 전체적인 논의 구조를 파악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하는 입체적인 공부가 필요하다.
▨ 경제 정의냐 경제 위기냐
현대차그룹 수사를 둘러싸고 경제계와 이를 반영하는 경제신문, 보수신문 등에서는 오래 전부터 우려를 나타냈고, 정 회장 구속과 관련해 개탄의 목소리까지 내고 있다. '굳이 구속까지 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검찰이 수사 초기부터 이미 비자금내역 등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었고 정 회장 부자를 비롯해 현대차 주요 임원들이 수사에 성실히 임했기 때문이다.'라며 검찰과 법원을 점잖게 힐난하고 있다.
그러나 정 회장 구속에 대해 박수를 보내는 입장도 상당수다. '기업 비리를 엄정하게 다루겠다는 검찰의 의지와 원칙을 확인한 것으로 평가한다. 정 회장은 1천억원대의 비자금을 조성(횡령)하고, 회사에 3천억원대의 손실을 끼친(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 이는 현행법상 5년 이상의 중형이 예상되는 범죄다. 더구나 비자금의 용처는 아직까지 거의 밝혀진 게 없고, 정 회장은 일부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구속 기준인 증거인멸의 우려가 높다고 보는 건 당연하다.'는 것이다.
이 같은 논란은 그룹 총수를 구속할 경우 경제에 미칠 악영향이 너무 크다는 '경제위기론'과 법과 원칙 앞에서는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다는 '경제정의론'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여론은 위기를 우려하는 쪽과 정의를 주장하는 쪽으로 확연히 갈라졌다.
▨ 사회적 기여와 처벌
사회적 기여가 큰 인물들의 경우 불법행위로 처벌될 때 그 기여도가 상당 부분 배려되는 일이 흔하다. 사법부의 최종 판단인 양형에서도 감안된다. 정몽구 회장의 구속과 관련해 이에 대한 입장들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다.
배려해야 한다는 입장은 주로 국가 경제 발전이나 현대차그룹, 임직원 등에 대한 영향에 주목한다. '자동차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 생산액 및 전체 고용인구의 10% 이상씩을 차지하고 있다. 글로벌경영 전략이 차질을 빚고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밀려날 경우 우리나라 경제에 미칠 악영향은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것이다. 현대차 그룹의 협력업체가 입을 타격도 만만치 않다. 현대차 그룹의 협력업체 임직원 5만여명이 정몽구 회장 부자를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검찰에 제출한 것은 자신들의 '생업 기반'을 흔들지 말아 달라는 호소인 것이다.'(경제신문 사설)
그러나 기여도가 책임을 면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는 주장에 더 무게가 실린다. '정 회장에 대한 '선처 여론'은 우리 사회 경제권력의 위력을 새삼 웅변한다. 현대차는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내놓으며 여론을 달래는 동시에 한편으론 위기론을 들먹이며 검찰을 압박했다. 재계와 보수언론은 경제 현실론으로 맞장구쳤다. 이들의 말대로라면, 경제 기여도가 큰 대기업의 불법행위에는 국가경제를 위해 면책특권이라도 줘야 할 판이다. 불구속 원칙은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배려하자는 취지이지 사회 지도층의 불법행위를 지켜주는 보호막이 아니다. 힘 없는 노동자와 농민의 생존권 투쟁에는 법대로를 강조하던 이들이 재벌한테는 불구속 수사 원칙을 들먹이는 건 낯간지럽다.'(신문 사설)
▨ 기업 지배구조와 경쟁력
대부분의 여론은 현대차그룹이 이번 사태를 계기로 투명 경영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와 관련해서는 조금씩 목소리가 다르다. 범세계적 경쟁 구조 속에서 신속한 의사결정 구조가 중요하냐,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 경영이 중요하냐는 논의도 여기서 생긴다.
일단 재벌그룹의 1인 지배 체제를 대놓고 동의하는 입장은 감히 내놓기 힘들다. 그러나 얼마 전 삼성그룹의 사태에서도 나타났듯 현대차그룹에 대해서도 정몽구 회장의 역할론을 강조하는 여론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한달 동안의 검찰수사만으로도 현대·기아차의 4천300여 하청업체, 해외 딜러들은 적잖은 시련을 겪었다. 당장 4월 유럽지역에서의 판매가 16%나 줄었다. 세계자동차산업은 앞으로 5개 메이저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세계랭킹 7위인 현대차가 글로벌 톱5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정몽구 회장의 역할이 절대적이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번 사법처리의 대상에 편법 상속이 포함된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재벌가의 편법 상속은 무엇보다 재벌총수 일가의 도덕성 결여 탓이 크다. 기업 재산을 사유물처럼 취급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고 사적 이익 극대화에 몰두하는 천민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때문이다. 재벌가는 어떻게든 세금을 물지 않고 안정된 경영권을 넘겨주려 하나, 이는 사욕이고 기업의 존립 기반인 자본주의 질서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정당한 세금 없이도 대물림할 수 있다는 생각부터 버려야 한다.'는 지적이 더 타당하게 들린다.(신문 사설)
이런 지적은 경제적인 손실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이번 사태를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지기 위한 진통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이제 현대차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기업이 투명경영을 정착시켜야 할 무거운 과제를 안게 됐다. 더 이상 비자금, 경영권 편법 승계 등이 통할 수 없는 세상이 됐다. 1인 경영 체제에 의존하다간 총수의 위기가 곧바로 기업의 위기로 이어지는 것도 보았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신속한 의사결정에 카리스마가 일정 부분 필요치 않은 것은 아니지만 현대.기아차처럼 세계 5위의 자동차 기업을 노릴 정도의 거대 기업이 오너 1인 체제로 굴러갈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투명하고 효율적인 시스템 경영의 도입만이 해법이다. 그렇지 않으면 기업의 지속적인 생존조차 도모하기 어려운 시대다.'(신문 사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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