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공동 작업때는 집집마다 장정들이 부역에 동원됐지만 불평 한 마디 없었습니다. 영주시 단산면 구구리~보계리를 잇는 구보교 공사때는 낮에 농사일로 지친 주민들이 밤에 횃불을 들고 나와 시멘트를 비벼넣고 자갈·모래를 나르면서 밤새 공사를 했지요."
당시 새마을 담당이었던 김도형(55) 영주시의회 사무국장의 기억이다.새마을 운동 결과에 따라 외형적으로 가장 달라졌던 것은 아마 마을 길 넓히기였을 것이다. 우리가 많이 썼던 '신작로'라는 용어도 이때 만들어진 것이다.
1971~78년 새마을사업으로 전국에서 개설 또는 개선된 마을진입로와 농로는 4만3천631㎞, 마을당 길이는 1천322m, 이 가운데 마을안길은 4만2천220㎞, 마을당 1천279m로 집계됐다. 당시 경북 등 전국의 마을단위 규모가 현재와는 달리 평균 100가구 정도라고 볼 때 농가당 13m의 마을안길이 새마을사업으로 넓어지고 굴곡이 바로잡힌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정부가 무상 지원한 시멘트는 마을당 2천100포, 철골은 2.6t으로 이 지원은 주민들의 자조정신과 협동심을 유발시키는 물적수단이 되면서 새마을운동의 위력을 배가했다.
마을길 넓히기는 자연스럽게 마을 흙담과 돌담, 나무로 된 담 헐기로 이어져 시멘트블록으로 다시 쌓아졌다. 당시 농촌의 전형적인 담장 모양은 시멘트블록으로 쌓고 위에 유리병 조각을 박아 도둑의 침범을 막는 형태로 요즘 베트남 농촌마을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다.
마을안길과 농로 넓히기 작업에는 낮에 일을 하고 밤이나 아침나절에 전체 주민이 함께하는 '부역'이 동원됐다. 이것을 두고 강제적으로 부역에 동원했다는 비판도 받았으나 당시 상황으로서는 강제성이 없을 경우 새마을 운동을 확산시킬 수 없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1970년 초반부터 군·민새마을협의회장을 19년간 지낸 박위훈(74·영주 안정면 오계리) 씨는 "당시 새마을지도자들이 줄을 긋고 말뚝을 박으면 그만이었다."며 "다리도 정부가 이·동단위별로 100~1천 포씩 무상 지원한 시멘트를 이용,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와 밤새 불을 켜 양수기 돌려가며 가설 공사를 했다."고 말했다.
또 주민들도 마을길을 넓히기 전에는 지게를 지거나 수레로 집에 드나드는 정도의 길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동력경운기가 공급되기 시작하면서 도로확장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상당부분은 자발적인 부역도 있었다. 마을안길 확장은 다시 마을마다 동력경운기 구입으로 이어졌고 이는 영농기계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됐다. 경북의 경우 1970년대 2,3개 마을에 1대 정도이던 동력경운기가 1975년엔 마을당 3대, 1986년엔 마을당 21대가량으로 크게 늘어났다.
당시 공사현장을 누볐던 황우상(57) 영주시 안정면장은 "마을안길 포장공사 때는 공무원들이 돌담 허물기에 반대하는 노인들을 주막으로 데려가 술을 대접하는 사이에 담을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고 기억했다.
산간 마을의 경우 안길 넓히기를 했지만 여전히 길이 구불구불하고 비좁아 동력경운기가 농가 마당까지 드나드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산간마을이라도 주민들의 협력이 잘된 곳에서는 마을과 들에까지 화물차량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도로를 넓혔고 그 결과 환금농작물 재배가 늘어나고 화물차량이 이들을 실어나르면서 농가소득 증대의 길이 활짝 열렸다.
1970년대 중반 청송군 송생리의 경우, 청송읍까지 8㎞ 구간의 도로가 넓혀지고 마을앞 북두들의 논 한가운데도 방사형 농로가 개설됐다. 마을의 40여 가구는 집집마다 경운기를 사들여 영농기계화 채비를 하고 넓힌 길을 따라 농산물을 읍에 팔아 본격적인 소득을 올리기 시작했다. 농로와 마을길 넓기히기에는 주민들이 공동으로 노력봉사를 하는 '부역'을 했고, 일부 지주들은 도로편입부지는 희사하기도 했다.
이처럼 1960년대 후반부터 새마을 운동에 의해 집중적으로 이뤄진 마을주변 도로와 교량개발, 신작로 개설은 기계화 영농기반 구축은 물론 농촌의 생활혁명을 가져오는 인프라가 됐다. 1990년에는 마을당 동력경운기 22.8대, 트랙터 1.2대, 벼이앙기 4.2대, 바인더 1.7대, 콤바인 1.3대가 보급될 정도로 영농기계화가 정착됐다.
황재성기자 jsgold@msnet.co.kr.
영주·마경대기자 kdma@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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