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암칼럼] 전쟁의 조짐을 경계하며

세상 일에는 조짐이란 것이 있다.

거미가 갑자기 거미줄을 열심히 치기 시작하면 날씨가 개고 늦가을에 개미가 집을 높이 쌓아 지으면 그해 겨울은 혹독하게 추워진다는 것도 하나의 징조다.

징조를 보고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는 것은 그러한 자연 현상뿐 아니라 반복된 과거의 경험이나 조짐을 보고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평택 미군기지 폭력 사태를 보면서 앞으로 전개될 미'일의 대북 전략과 그 전략에 맞닿아 있는 4천만 남한 국민의 평화와 생존에 대한 미래 예측은 어떻게 될까. 미'일의 대북 전략의 최후의 초점은 그들이 과연 북한을 칠 것인가에 모인다. 그러나 아직, 그리고 아무도 미국의 북한 공격 여부를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정말 그 어떤 조짐조차도 없는가. 60여 년 전으로 돌아가 보면 그렇지 않다. 당장 오늘부터 모든 미국인과 미국기업, 미국에 거점을 둔 외국기업들이 북한의 선박을 보유, 임대, 가동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외국자산 관리 규칙'이 시행된다.

북한 선박에 보험을 제공하는 것도 금지된다. 북한의 외화 예금 자산은 이미 동결됐다. 적국의 자산동결과 무역 제재. 60여 년 전 미국이 일본에 가했던 조치다. 그리고 그 동결 조치는 진주만 기습과 태평양 전쟁을 유발했다.

60년 전 5월 극동군사재판 법정에서 로우건 변호사는 미국 측 검사를 향해 이렇게 반박했다.

'구미 제국은 진주만 피침에 앞서 수년 동안 고의로, 계획적'공모적으로 일본에 대해 경제적 압력을 가했고 그 결과 전쟁이 된다는 것을 충분히 알면서도 행동을 취했다. 태평양 전쟁 시작 무렵 일본의 철강 생산량은 미국의 1개월 생산량보다 적었고 1937년까지는 일본 자체 설계로 된 항공기조차 충분히 생산치 못했다. 미'일 통상 항해조약은 미국의 일방적 폐기로 효력을 잃었고 대일 수출 금지 품목을 계속 추가시켜 나가며 압박했다.

이어 영국과 네덜란드와 합동으로 일본의 자산을 동결했다. 이는 일본의 소멸을 뜻하는 것이고 이에 전쟁을 결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미국이 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다.'

군사재판은 26명의 전범들에 대한 유죄 판결을 내렸지만 야스쿠니 신사의 전범들은 강대국이 의도적으로 교묘히 유발시킨 전쟁의 피해자요 생존을 위해 싸운 구국의 군신(軍神)이라는 논리를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항변한다. 자민당 국회의원들은 '도쿄전범재판은 국제법 위반이었다'는 공개적 반박까지 서슴지 않고 있다. 전범들은 발톱을 드러내기 전에 도발의 핑곗거리부터 찾는다. 적절한 핑곗거리를 겨냥할 때까지는 야욕의 발톱을 감추고 온갖 그럴싸한 명분을 내걸어 시간벌기 말싸움을 벌이며 공격의 틈이 커지고 전세가 무르익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숱한 전쟁의 역사 속에서 그리고 수없이 반복된 조짐들에서 보아온 징조의 법칙이다.

북한에 대한 자산동결'무역 제재를 '혼 좀 나 봐라'고 남의 집 불구경하듯 하고 있기엔 꺼림칙한 조짐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미국의 입들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미국은 선제공격을 위해 반드시 국제적 동의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라이스)

'미국군은 지하시설 파괴를 위한 소형 핵탄두 투타 훈련을 3년 전부터 실시하고 있다'(럼즈펠드)

'미국은 김정일을 미국 법정에 세울 수 있을 것이다'(미의회 연구소)

개미집만 징조가 아니다. 사람의 입도 징조다. 군인을 죽봉으로 찌르며, 군사동맹국에 기지도 안 내주겠다는 폭력'자산동결'선박 제재는 어느 쪽에건 핑곗거리를 줄 요소가 된다.

평화보다 더 소중한 것이 없는 우리에게는 죽봉을 든 세력과 자산동결 그 어느 쪽도 달갑잖은 징조일 뿐이다.

나쁜 징조가 보일수록 정신 바짝 차려야 산다.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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