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한국, 선진국진입은 가능한가?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이며 우리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이 나라를 반드시 선진국에 진입시켜야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객관적 데이터만 놓고 보면 한국의 선진국 진입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생각된다.

봉건제를 거치지 않은 나라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학설에 대하여 세계역사가들은 거의가 의견의 일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봉건제는 매우 복잡한 제도이지만 간단히 말해서 계약에 의하여 신분이 세습되는 무신들에 의한 지방 자치제도라고 할 수 있다. 봉건제 하에서는 신분의 이동이 불가능하여 지배계급인 귀족은 대대로 귀족이고 피지배계급인 평민은 영원히 평민으로 남게 된다.

언뜻 생각하면 상당히 모순 되고 양극화된 사회 같지만 국가가 이 과정을 거쳐야 만이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거의가 정설로 굳어져있다. 봉건제의 장점은 피지배계급의 직업이 고정되어 대장장이의 아들은 자자손손 대장장이이기 때문에 그 가문의 독보적인 기술의 축적이 가능하고 따라서 장인정신이 생겨난다. 그리고 국민각자는 스스로 분수를 알게 되어 쓸데없는 허황된 꿈을 꾸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배계급에서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형성, 실용주의, 산업의 발전, 민주주의, 계약자유의 원칙 등이 확립되는 것이다.

봉건제는 주군과 신하의 계약관계이기 때문에 이 제도 하에서는 자본주의의 근본인 지방자치는 기본이었다. 또한 봉건제는 무신들의 지배이기 때문에 문신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명분에 집착한 3일장이니 5일장이니 하는 쓸데없는 공리공론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

무신들은 아랫사람의 의견이라 하더라도 옳다고 생각되면 즉시 채택하여야 내일 전투에서 살아남기 때문에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요즘 한국사회에서는 일본이나 유럽과 달리 상류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찾아 볼 수 없다는 불평이 있지만 이 현상은 한국인들의 특별한 도덕적 결함 때문은 아니고 변동이 심한 한국의 지배구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이다.

거지로 살다가 어제 복권에 당첨되어 오늘 벼락부자가 된 사람에게 상류계층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할 수가 없고 할아버지, 아버지 때까지 벼슬아치의 서슬에 짓눌려 살다가 어렵게 과거에 급제하여 벼락출세를 한 사람에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기대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는 수 세대에 걸쳐서 지배계급으로 군림한 지배계층들이 그 사회에 갖는 자연스런 책임감이지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도덕심이 아닌 것이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사쓰마번의 시마쯔 가문이나 독일의 하노버가(家)같은 집안은 수 백년간 그 영지를 지배하면서 지배계층으로서 특권을 누려 왔기 때문에 외침이 발생하면 영지의 수호와 가문의 명예를 위해서 영주는 목숨을 걸고 최일선에 서게 되는 것이다.

설령 영주가 그렇게 싸우다 영지를 지키고 전사하더라도 자식들은 다시 그 영지의 영주가 되어 가문의 특권을 이어갈 수가 있는 것이다. 즉 봉건제 하에서는 가문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과 국가적 애국심이 일치되기 때문에 이 세 가지 요건이 삼위일체가 되어 노블리스 오블리제가 절정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봉건제가 아닌 조선의 고을 원님이 왜구의 침략을 받아 최일선에서 싸우다 죽어서 고을을 지켜낸 경우에 그 아들은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고을의 원님이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없이 살아가는 서러움만 겪고 그 가문은 일시에 몰락을 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 말기에 무신들에 의한 봉건제가 정착되려고 하는 결정적인 순간에 몽골의 침략을 받아 무신세력들이 와해되어 봉건제로 진입하지 못하였다. 그 반면 일본의 싯겐(執權) 호오조씨 가문은 몽고의 침략을 격파하여 봉건제를 확고히 하였으며 그 이후부터 일본과 한국의 역사는 정반대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용재 대한의사협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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