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장바닥을 훑었던 각설이 패들이 한때 불러 인기를 모았던 타령조에 이런 가사가 있다. "…골목골목 부산장 질(길) 못 찾아 못 보고/ 아가리(입) 크다 대구장 너무 넓어 못 보고…"
지금은 어떤가. 부산의 비좁은 시장 골목길이야 여전하다손 치더라도 대구의 시장 바닥은 여전히 아가리가 큰가. '큰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상권이 엄청났던 서문시장도 지금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별반 없다. 대형유통업체들이 곳곳에 포진해 큰 시장의 기능을 대신해 줄 만큼 시대가 변했다. 그렇다고 대구가 변한 것은 아니다. 아가리 컸던 대구는 지금 그 입이 쪼그라들어 웬만한 전국적 수치는 꼴찌다. 꼴찌에게 어찌 박수만 보낼 수 있으랴.
툭하면 이중환의 '택리지'를 인용한다. 조선 인재의 절반이 영남에 있다며 그 대표성을 대구에다 묻히기도 한다. '팔도인심론'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에 적힌 태산교악(泰山喬嶽). 성격이 떳떳하고 강직하다는 것이다. 지조와 절개를 지키며 신명과 명리에 목줄을 매달 줄도 안다는 것이다. 불의와 부정을 참지 못했고 그래서 의리에 죽고 사는 사나이들. 신물도 난다. 그렇지만 지금 그 사나이들은 어디로 가서 무엇들을 하고 있는지. 다시 만날 수는 있을까.
얼마 전 서울의 한 월간지가 대구를 파헤치면서 '동종교배의 도시'로 규정했다. 삭막하고 을씨년스런 표현이다. 동종교배의 생물학적인 결과는 쉽게 이해된다. 그러나 경제적이며 정치적인 결과는 쉽게 이해가 되질 않는다. 왜 대구를 그렇게 표현했는지 그 당시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정신들 차리라며 휘두른 채찍 정도로 여기며 모두들 수긍한다는 속내인가.
투박한 사투리에 세련되지 못한 언행들. 무표정하며 비사교적이다. 보수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이고 권위적이라고 했다. 해방 후의 정치사에서도 대구 사람들의 항거는 온 국민들이 알아주질 않았는가. 여기다 학문을 숭상하고 교육열은 둘째 가라면 서럽다. 문화적인 인식도 기라성 같은 인재들에서 여전히 그 맥을 이어오건만 어느 틈에 반반한 미술관'박물관 하나 없어도 컬러풀 도시로 비상해 버렸다. 미래사회의 주역인 정보. 그에 관한 뚜렷한 통찰력도 없이 지금 들이닥치고 있는 대구의 앞날을 너무 쉽게 예단해 버린 색깔은 아닐까.
색깔이라면 또 있다. 5'31 색깔. 대구에 맞는 색깔은 과연 어떤 색깔일까. 칙칙한 교복을 물려받던 색깔이나 싹쓸이 색깔 아니면 넙죽넙죽 주는 대로 받아먹는 염치없는 색깔일까. 대구사람들은 여기에서도 여간 고민이 아닐 것이다. 왜 이런 색깔들뿐일까. 잘 생겼지만 돈이 없는 총각. 못생겨도 넉넉한 총각. 두 총각을 사이에 두고 처녀는 고민을 했다. 드디어 처녀는 결심을 했다. 잠은 잘생긴 총각집에서 자고 밥은 못생겼지만 넉넉한 총각집에서 먹기로 했다. 그래도 될까. 판단은 유권자 몫이다. 여기에 어떤 색깔도 필요 없다. 그래서 대구사람들은 지금 더 괴로운지도 모른다.
타지역 사람들은 대구사람들을 접근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고들 한다. 보수성 때문이란다. 그러나 일단 사귄 후 신뢰가 바탕이 되면 엄청 적극적이며 포용성도 있음을 안다는 것이다. 표를 달라는 후보자들도 지금 이 점을 깊이 새기고 있을까. 물론 유권자들도 색깔에만 현혹되지 말고 휘황할수록 잘 살펴야 한다.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아차 이게 아닌데 하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었음을 미리 헤아려야 한다.
황지우의 '바깥에 대한 반가사유'라는 시가 있다. 해 속의 검은 장수하늘소여/ 눈 먼 것은 성스러운 병이다/ 활어관 밑바닥에 엎드려 있는 넙치/ 짐 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본다, 보일까/ 어찌 하겠는가, 깨달았을 때는/ 모든 것이 이미 늦었을 때/ 알지만 나갈 수 없는 무궁의 바깥;/ 저무는 하루, 문 안에서 검은 소가 운다.
앞으로 20여 일도 채 남지 않았다. 잘못하면 넙치가 되어 짐 자전거 지나가는 바깥을 보아야 할 처지다. 그래도 밖을 보려 안달을 할 것인가. 6월의 대구가 궁금하다.
김채한 논설위원 nam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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