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위기때마다 나온 현정은 회장의 e-메일 경영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을 통해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적장(敵將) 정몽준 의원에 직격탄을 날렸다.

현 회장은 과거 KCC 정상영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때나 김윤규 전 부회장 파동 때에도 임직원에게 보낸 e-메일로 스스로를 추스르고 위기를 해쳐나갔다는 점에서 이날 e-메일은 더욱 의미심장하다.

◇ 현대그룹 '돈싸움'과 '여론싸움' 병행 = 현 회장은 11일 그룹 계열사 임직원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정 의원에게는 매우 아픈 상처일 수 밖에 없는 2002년 대선 상황까지 거론하며 정 의원에게 맹공을 날렸다.

현 회장은 "정 의원은 정(鄭)씨 직계 자손에 의해서만 경영이 이뤄져야 된다는 식인데, 이처럼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사고로 어떻게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겠느냐"며 "정 의원은 2002년 대선 당시 말을 바꾸고 신의를 배신한 것처럼 언제든 경영권을 뺏으려는 검은 속내를 드러낼 가능성이 있다"고 정 의원을 힐난했다.

현 회장이 이렇게 강한 어조로 정 의원에 '저주'에 가까운 비난의 말을 퍼부은 것은 단순한 억하심정에서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미지가 생명인 정치인인 정 의원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했다"는 기존 주장을 번복해 경영권에 손대려 할 경우, 이와 같은 비난을 면키 어렵고 정치인으로서도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정 의원이 끝내 현대상선의 경영권을 뺏는다면 정 의원도 그에 상응하는 소중한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을 잃을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경고장'이라는 것.

현대그룹은 또 최근 케이프포춘과의 현대상선 지분 매입을 취소하는 등 실탄확보와 우호세력 끌어들이기 전술로 현대중공업그룹과의 '돈싸움'에도 대비하고 있다.

결국 이날 e-메일은 현대그룹이 수성(守城)을 위해 현대중공업그룹과의 돈싸움을 위한 '실탄전'과 적장(敵將) 정 의원의 아킬레스건을 공략하는 '여론전'을 병행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 현 회장 "나도 정(鄭)씨 가문이다" = 현 회장의 이날 e-메일에서 눈에 띄는 것은 현 회장이 범현대가에게 "나도 현대그룹의 정통성이 있는 정씨 가문의 일원이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최근 정 의원이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하기 전 범현대가문의 암묵적인 동의를 얻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갖고 퍼지고 있는 가운데, 현 회장 자신도 결코 현대가문으로부터 소외될 수 없다는 점을 확실히 짚고 넘어가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현 회장은 "저는 정씨 집안으로 시집와서 30년의 세월을 살았고 어떠한 경우에도 정씨 집안 사람이라는 것을 부정하지 않았다"며 "제가 현(玄)씨인 것은 제 아버님이 현씨이기 때문이지, 저의 아들과 딸들은 모두가 고(故) 정몽헌 회장의 자식들이며 모두가 정씨다"라고 강조했다.

이는 최근 불거진 현대그룹 적통 논란에 대한 현 회장의 공식 입장으로 보인다.

비록 자신은 현씨 성을 쓰고는 있지만 회사는 고 정몽헌 회장의 회사이며, 현 회장 자신과 정씨 성을 갖고 있는 자식들이 모두 적통을 갖고 있다는 뜻을 범현대가에 공식 전달한 것이다.

◇ 현 회장의 돌파력 이번에도 통할까 = 현 회장은 이번뿐만 아니라 앞선 위기 때에도 e-메일을 통해 국민에게 감성으로 호소하는 경영전략을 펴 왔고, 이는 현 회장이 위기를 돌파해 온 '뚝심'을 지탱해 왔다.

현 회장은 2년 전 KCC 정상영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때와 김윤규 전 부회장의 퇴출로 인한 대북사업 파행 위기 때에도 e-메일을 통해 스스로를 추스르고 임직원들을 흐트러지지 않게 단결시켰다.

그러나 이번 정 의원과의 경영권 분쟁은 양상이 다소 다르게 진행되고 있다.

일단 과거 정상영 명예회장과의 경영권 분쟁에서는 KCC가 주식을 불법으로 취득한 점 때문에, 대북사업 파행 때에는 김 전 부회장의 개인비리가 있다는 점으로 현 회장은 정당성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분 취득의 목적을 떠나 합법적으로 시장의 원리에 따라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했고, 향후 현대상선 유상증자에 참여하거나 경영에 개입할 때도 '주주 이익 극대화'의 명분을 충분히 내세울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이에 따라 실탄확보와 여론전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 현대중공업의 공격에 방어를 하고 있는 현대그룹의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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