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거의 유일한 정치적 위안은 무엇일까?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다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한나라당이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다.'라는 기대감일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일이다. 여론조사기관의 견해로는 '대선 후보들 중 박근혜와 이명박이 정동영과 김근태보다 크게 우위를 지킴에 따라 정당지지도에 영향력을 끼친 결과'라는데, 만약 최근 여론조사에서 박과 이를 앞지른 고건이 여당·민주당과 결합할 경우에는 판도가 상당히 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현재 대한민국 보수세력에 대한 정치적 위협은 '권력장악'을 절대적 가치로 숭배하는 정치판의 가변성인가? '한나라당 필승'을 외치는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여기는 모양이다. 외부만 탓해온 타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타성은 그들에게 정치적 적이 오직 외부에 있다는 확신까지 심어 주었다. 그래서 그들은 진보나 좌파로 불리는 세력을 정치적 적으로 규정하기도 한다. 현재 대한민국 보수세력의 정치적 적은 진보 좌파세력인가?
그럴 수도 있겠다. '권력장악'을 놓고 서로 경쟁하기 때문이다. 국사교과서의 근·현대사 왜곡 공방, 과거사 조사 공방 등은 경쟁이 곧 투쟁으로 육박할 것처럼 아슬아슬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내 보기엔 그들의 가장 무서운 적은 그들의 내부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 정체는 한마디로 '부패'이며, 부패보다 더 무서운 적은 그들이 그것에 무디거나 관대하다는 점이다.
한나라당 텃밭에서 잇따라 터져 나온 지방선거 '공천장사'는 바로 그들이 가장 무서운 적인 내부의 부패에 안일하게 대처해 왔다는 증거이다. 김덕룡·박성범처럼 전국 뉴스를 타진 않았지만 내가 사는 포항에서도 그것은 불거져 나왔다. 포항에서 오랜 세월 금배지를 달고 사는 한나라당 어느 국회의원의 한 측근이 공천장사에 연루된 혐의로 수배됐다.
물론 진보 좌파세력의 내부에도 부패는 있다. 그쪽에 속한 이름들이 거론된 스캔들이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정치적 부패에 대한 도덕적 잣대는 어느덧 규모의 경제학 수준으로 낮아져 있다. 바늘도둑도 도둑이고 소도둑도 도둑이란 말은 정치적 부패를 심판하는 여론의 도마에선 오래 전부터 통용되지 않는다.
변화된 민심의 추이를 절묘하게 읽어낸 최고의 정치적 수사(修辭)로는 아무래도 대통령 노무현의 "트럭과 티코"를 꼽아야 옳을 것 같다. 한나라당을 트럭으로 깔아버리면서 열린우리당을 티코로 들이받았다.
얼마 전에 이회창의 강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마르크시즘 이론을 들어 진보 좌파세력과
현 정권에 비난과 비판을 퍼부었다. 그의 세계관에서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면 그것은 그의 자유요 권리다.
그러나 문제는 반향의 너비와 높이다. 박수소리가 들려오긴 했어도 그를 정치적으로 아쉬워하는 자들의 범위를 거의 벗어나지 못했다. 내가 알고 지내는, 제법 양식을 갖춘 40대의 자유주의·자본주의 지지자들도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이유를 물었다. 그의 이름에 '차떼기'의 그림자가 따라붙고, 그가 석고대죄 하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는 거였다.
이렇게 부패에 대한 기억은 매섭다. 한나라당의 영남지역 지방선거 공천장사 문제는 지역감정이 키운 오만과 부패의 결과다. 공천만 받으면 지역감정이라는 당선의 안전장치에 독불장군처럼 올라타게 된다고 믿는 국회의원은 거들먹거리고, 공천만 받으면 당선된다는 지방선거 후보자는 보험금을 갖다바치는 구조를 깨지 못한다면, 집권의 도덕성을 의심받아 마땅한 정당이다.
땅속 고구마는 하나씩 들통나도 고구마줄기가 걸려드는 날은 오지 않는다고 믿으면, 참여정부의 인기하락을 최대 후원자로 업은 '불안한 처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열린우리당은 전국적으로 당선 가능성이 없어서 공천비리도 없다."라는 한심한 방패를 흔들어대는 수준으로는 내부의 적을 이기지 못해 결국 패배로 이어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대환(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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