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햄릿' 김동원

'20세기 최고의 배우'로 불렸던 영국 출신 명배우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 영화와 연극을 넘나들며 중후하고 지적인 연기 세계를 펼쳤던 그는 영국 왕실로부터 '경(卿'Sir)'의 칭호를 받을 만큼 문화'예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배우였다. 그가 감독'주연을 맡았던 영화 '햄릿'은 그에게 제21회 아카데미상(1948) 남우주연상을 안겨주었고, "셰익스피어도 자랑스러워할 만큼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평을 받았다.

○…82세의 올리비에경이 죽음을 앞두게 되었을 때였다. 간병인이 그가 물 마시는 것을 도와주자 그의 뺨으로 번진 눈물이 귀로 흘러내렸다. 올리비에는 눈을 깜박거리며 천천히 돌아누우면서 말했다. "나의 사랑이여, 우리는 이곳에서 햄릿을 연기하지 맙시다." 죽음을 맞게 된 그 순간에도 이 대배우는 눈물이 귀로 흘러드는 자신의 모습을 왕의 귀로 독약을 흘려넣은 셰익스피어 '햄릿'의 한 장면과 관련지어 그렇게 말했다.

○…13일 타계한 배우 김동원의 이름 앞에는 흔히 '한국의 햄릿'이니'한국의 로렌스 올리비에'라는 별칭이 붙는다. 거기엔 대구와도 깊은 인연이 있다. 한국전쟁 시절인 1951년 9월, 지금 한일로에 있는 옛 키네마극장에서 셰익스피어 비극 '햄릿'이 초연됐다. 당시 극단 신협의 배우 김동원이 주인공인 햄릿 왕자역을 맡았는데 전쟁통임에도 3천~4천 명이 몰렸을 만큼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후 김동원에겐 '햄릿'이란 별명이 붙었고, 62년 간의 무대 생활 중 한국 연극사의 중요한 순간마다 그는 햄릿 역을 열연했다. 1994년 은퇴 무대가 됐던 '이성계의 부동산'까지 생전에 300여 편의 공연작에서 각양각색의 인물로 완벽하게 변신했던 그에게는 연극이 삶 그 자체였다.

○…최불암 씨가 "영국이라면 '경'의 칭호를 받아야 할 분"이라고 했지만 그 말이 과장이 아닐만큼 타의 귀감이 될 만한 사람이었다. 매 작품마다 완벽주의적인 자세로 임하였고, 그 풍파 많은 곳에서 조금의 불미스런 일조차 없을 만큼 사생활 또한 깔끔했다. 사랑했던 연극무대에 60여 년 간이나 설 수 있었던 행복한 배우 김동원. 한국 연극계에서 '연기자의 교과서'인 그는 하늘나라에서도 로렌스 올리비에와 함께 햄릿 공연을 펼칠지도 모르겠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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