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봄날은 간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가수 조용필과 한영애가 리바이벌해 부른 '봄날은 간다'란 노래의 구성진 음색과 애틋한 노랫말이 새삼스레 가슴에 와닿는 계절이다. '춘래불사춘'이라 춘정에 겨운 푸념을 늘어놓은 때가 엊그제같은데 초록에 지친 봄햇살이 어느덧 사위어가고 있다.

노랫말처럼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길'에서 맺었던 '알뜰한 그 맹세도',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길'에서 주고받았던 '실없는 그 기약도'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다.

'사랑은 변하는가?'란 화두를 던졌던 유지태와 이영애 주연의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처럼, 겨울에 만났던 사랑의 열병도 봄을 지나 여름의 문턱에서 식어가는 것이다. 계절이 변하듯 그냥 그렇게...

가는 봄날을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이 신파조의 비애는 김소월의 시 '실버들'에도 고스란히 스며있다. '실버들을/ 천만사 늘어놓고/ 가는 봄을 잡지도 못한단 말인가/...'. 그렇다. 실버들을 천 가지 만 가지 늘어놓은들 가는 봄을 어찌 붙잡을 수 있으랴.

게다가 '낙화유의수유수'(落花有意隨流水) 유수무의송낙화(流水無意送落花)'-떨어지는 꽃은 뜻이 있어 흐르는 물을 따르지만, 흐르는 물은 무심히 꽃을 흘려보낼 뿐-란 싯귀에 이르면 도리없는 인간사의 무력감에 절망의 눈물을 떨굴 뿐이다.

어쩌면 이같이 가버릴 봄날이 두려워서 인간의 삶은 안으로는 신을 갈구했고, 밖으로는 영웅을 그리지 않았을까. 그런데 서양의 한 철학자는 "신은 죽었다"고 일찌감치 선언해버렸다. 그뿐인가. 현실에서 의지하려 했던 영웅(?)들은 초록에 겨워 기름진 햇살에 흠뻑 빠져 있을 뿐이다.

화려한 봄날일수록 더욱 허망하게 스러지는 자연의 이치를 설파해야 할 신과 영웅은 어디로 갔는가. 오늘날 월드컵 축구에 열광하는 붉은악마의 아우성은 신을 잃어버린, 영웅이 부재한 20세기 인류의 탄식이 아닐지.

이 또한 봄의 전령인 동백꽃처럼 때가 되면 붉고 서럽게 떨어질 것을.... 무궁한 자연의 순환과 속절없는 세월의 무상감에 앙앙불락하는 우리 필부필부들이 의지할 곳은 정녕 어디인가.

차제에 우리 사회의 각계각층에서 지도자임을 자처하는 인사들에게 노래 한 곡을 권한다. '봄날은 간다'. 보름 앞으로 다가온 대구·경북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특별한 사람들에게, 지역민들의 정신적 귀의처인 동화사 주지로 새로 취임하는 스님과 소임을 마치고 떠나는 분에게도 노래 한 곡을 권한다. '봄날은 간다'. 아직은 성황당길과 역마차길에 서성대고 있을 봄날이 다 가기전에....

조향래 (문화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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