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권의 책] 궁

사극(史劇) 전성시대를 사는 부모들은 고민스럽다.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 늦은 요즘 아이들은 밤늦게 TV 사극을 보는 일이 흔해서 함께 보는 부모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질문을 곧잘 던지기 때문이다.

"아빠, 궁궐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 같은데 숫자가 얼마나 돼? 전부 궁궐 안에서 함께 사는 거야? 잠은 모두 어디서 자?" "중전은 뭐고 후궁은 또 뭐야? 같은 데서 사는 거야? 모두가 아이를 낳으면 어디서 기르고 공부는 어떻게 해?"

한두 번은 아는 지식을 총동원해 어렵사리 넘어가지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질문에는 결국 큰소리가 나오고 만다. "시간이 몇 신데 아직도 안 자니? 얼른 들어가서 자."

문화재와 궁중 생활 전문가인 신명호 부경대 교수가 쓴 '궁'은 부모들이 이런 궁여지책을 면할 수 있도록 한 시름 덜어준다. 어른들이 읽어도 재미있으므로 책을 샀다면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하는 것이 좋을 듯. 아이가 책을 읽고 질문할 만한 내용은 미리 챙겨두거나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이해를 넓혀두는 것도 지혜.

'궁'은 마치 재미있는 동화책처럼 궁궐에 있는 사람 하나하나를 주인공으로 만들고 그들의 생활과 생각을 보여주면서 복잡하기 짝이 없는 궁궐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다. 궁궐의 열쇠를 담당하는 사약 김개똥의 새벽, 교태전 지밀상궁인 이 상궁의 아침, 경복궁의 남쪽을 지키는 김 부장의 밤 같은 방식이다. 중요한 대목마다 실제 사료를 기반으로 하는 설명들과 삽화를 배치해 지식을 넓힐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장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정도만 알아 둬도 국사 공부에 적잖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조선시대 궁궐을 무대로 하고 모두가 서울에 있다는 점에서 지방 학생들에게는 아쉽지만, 혹 아이와 함께 서울 갈 기회를 낼 수 있다면 함께 경복궁 정도는 찾아가 볼 일이다. 근정전이나 강녕전 같은 큰 건물 앞에서만 사진 찍는 밋밋함에서 벗어나 소주방이나 다인청, 별감방 같은 조그마한 건물을 찾는다면 한결 재미있는 서울 여행이 될 것이다. 함께 사극 보면서도 굳이 큰소리치지 않고, 뻔한 스토리보다 뒤에 담긴 배경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멋진 가족이 될 수 있다면 이 책의 활용도는 만점을 넘는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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