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사회와 정부도 효도하는 시대

지난 주에 어버이날이 있었다. 어버이날이 있는 주가 끝나는 일요일 밤에 친정아버지께서 전화를 주셨다. "아버지가 많이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 열심히 하거라. " 내 일을 도와주기 위해 아프신 아버지가 꼬박 3시간 동안 전화를 돌리셨다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이 확 나왔다. 나도 아프면 귀부터 아파서 아플 때는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온 전화도, 반가운 소식을 알려주는 전화도 받기가 힘들다. 대상포진과 당뇨로 쇠약해져 몇 년째 바깥출입도 잘 못하시고 누워계신 팔순의 아버지가 그 고통을 참아가면서 딸을 위해 전화를 하셨단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께는 아무 것도 한 것 없는 딸을 위해서….

나도 남편도 원래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시간도 돈도 여유가 없는 빠듯한 살림에 아이 셋을 키우다 보니 힘들 때도 있다. 정서적으로 물질적으로 충분하게 돌보고 보살피지 못해 아이들의 마음이 쓸쓸하고 거칠어져서 자기들끼리 상처 주며 싸우는 모습을 볼 때, 조금만 그 심정을 다독거려주면 될 일을 급하다고 결과만 요구하며 야단쳐서 아이들 마음을 다치게 해놓고 후회할 때 양가 부모님들 생각을 많이 한다. 우리보다 더 빠듯하고 힘든 살림에 어떻게 팔남매, 육남매를 다 키우셨을까? 지금의 우리들 같았으면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인데.

"그때는 다 그렇게 살았으니까 그렇게 사는 줄 알고 살았지, 지금 그렇게 살라고 하면 못살지." 하시지만 삼사십 된 자식들을 대하는 부모님들의 마음 씀씀이는 우리들이 자녀를 대하는 마음보다 더 넓고 깊은 것 같다.

환하고 따뜻해서 버스에 앉으면 잠이 솔솔 오는 봄이면 버스에서 돌아가신 어머님을 뵙곤 한다. 버스 앞면 전체 유리 앞으로 어머님이 환한 웃음을 지으며 나타나신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에 사드린 초록색 봄 스웨터를 입으신 모습으로. 반가움과 그리움으로 눈물이 왈칵 쏟아지지만 마음은 기쁘다. 돌아가신 어머님께 아직도 사랑을 받는 느낌으로 마음이 행복으로 가득해진다.

어머님은 한평생 자식 뒷바라지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외아들에 바깥일로 바쁜 며느리를 둬서 집안살림까지 맡아주시느라고 늘그막까지 고생하시다 위암으로 1년 반을 투병하시다 돌아가셨다.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고 명랑한 기분을 가지려 노력하셔서 아파 누워 계셔도 어머님이 살아계실 때가 가족들이 더 행복했던 것 같다. " 내가 치매가 아니고 암이니까 너나 나나 얼마나 다행이냐 " 어머님이 웃으며 하신 말씀이 남아 어려울 때 나에게 힘을 주고 있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만 그랬겠는가? 우리들 모두의 어머니 아버지께서 다 그렇게 삶을 살아오셨다. 제비새끼처럼 입 벌리고 바라보는 자식들만 아니라 어린 나이에 시집 장가가서 모진 시집살이도 겪어내면서 부모봉양도 묵묵하게 해 오신 분들이다. 가정적으로만 아니라 나라와 사회적으로도 열심히 땀 흘려 일하면서 나라를 일구고 사회를 가꾸어왔다. 고용보험도 산재도 연금도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젊은이들이 3D업종이라고 기피하는 일보다 더 힘든 일을 몸뚱이 하나로 겪어낸 분들이다.

저출산고령화 사회를 들먹일 때마다 마음이 힘들다. 나이 들어 오래 사는 것이 죄인 것처럼 어머니 아버지들이 느끼실까봐, 한평생 고생한 것 몰라주고 놀고먹으면서 자식들 돈이나 국가 돈이나 축내는 사람들로 취급한다고 서러워하실까 마음이 아프다.

어머님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시장에 갔더니 너무 색이 고운 스웨터가 있어서 어머님께 사드렸다. 날 받아놨는데 이리 예쁜 옷을 사왔냐고 너무 기뻐하셨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어머니는 항상 그 스웨터를 입고 계신다. 가정만 아니라 사회와 정부도 효도하는 시대가 되었다. 효도는 부모님 마음을 헤아리는데서 시작한다는 말, 다시 한번 생각해야겠다.

박영미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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