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A씨는 얼마 전 회사동료로부터 "범법자는 선거권이 박탈돼 이번 지방선거에 투표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올 초 음주운전을 하다 경찰에 적발된 A씨는 '뜨끔'했다.
이전에도 두 번이나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전과'가 있어 법원으로부터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던 A씨.
A씨는 선거사범도 아니고 더욱이 강력범죄자도 아닌데 '설마' 하는 심정으로 15일 자신의 주소지 구청에 확인전화를 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담당 공무원의 대답은 차가왔다. "A씨는 선거권이 없습니다."
A씨는 "선거사범이 아니더라도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선거권을 박탈한다고 선거법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었다."며 "선거법 위반 혐의라면 모르겠지만 이와 관계없는 '전과자들'에 대해서까지 '전과'를 문제삼아 투표권을 앗아가니 이번 투표일에 자녀들에게 고개를 들 수 없을 것 같다."고 허탈해했다.
5·31 지방선거를 보름여 앞둔 가운데 선거권을 박탈 당해 이번 축제에 초대받지 못한 사람들이 폭증하고 있다. 엄격해진 선거법 잣대 때문에 선거사범이 증가한데다 범법자들도 해마다 늘면서 지난 2004년 총선 때보다 지역에서 선거권을 잃은 사람이 2년사이 57%(2천805명)나 급증한 것.
이같은 선거권 박탈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학계 및 법조계 전문가들에 따르면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부재자투표 대상도 확대하는 등 참정권 확대추세와 달리 옛날 제정된 선거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바뀐 선거 분위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특히 외국 경우 선진국일수록 중범죄자들에게는 엄격하게 선거 참여를 제한하지만 과실범이나 경제범 등 선거와 무관한 경범죄자들에게는 선거참여의 폭을 완하하는 추세여서 국내 상황과 많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대구시내 7개 구청에 따르면 15일 현재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할 수 없는 주민은 중구 405명을 비롯, ▷동구 1천184명 ▷서구 994명 ▷남구 842명 ▷북구 1천467명 ▷수성구 1천238명 ▷달서구 1천575명에 이르렀다.
지난 2004년 총선때 중구는 256명이었고, ▷동구 814명 ▷남구 704명 ▷북구 1천124명 ▷수성구 1천100명 ▷달서구 902명이었던 것에 비해 최고 74% 이상 늘어났다.
선거권을 박탈당한 사람 중 음주운전, 무면허운전 등 도로교통법 위반자나 불황여파로 인한 생계형 범죄자 등이 절반 가량 차지해 참정권의 지나친 제한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하세헌 교수는 "민주주의는 일반 유권자들의 참여를 가능하면 확대하는 것이 대원칙"이라 말했다. 그는 또 "이번 선거부터는 외국인 선거권 부여와 부재자투표 대상 확대 등 선거 참여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선거권 박탈에 따른 잣대는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인상"이라고 주장했다.
계명대 정치외교학과 김관옥 교수도 "선거와는 전혀 무관한 교통사범들에 대해서도 대거 선거권을 박탈하는 것은 지나친 참정권 제한으로 볼 수 있다."며 "시대가 변하는 속도에 맞게끔 우리 선거법도 구시대의 옷을 벗고 변화를 수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변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정병양 변호사는 "수십년 전부터 선거법은 범죄자들의 선거권 및 피선거권 제한을 엄격하게 하지만 점점 참정권의 문을 활짝 여는 추세에 맞춰 선거법 개정 필요가 있다."며 "도로교통법 위반자 등 과실범에게까지 선거권을 빼앗는 것은 지나친 참정권의 제한"이라고 말했다.
윤용희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선거사범이나 중범죄자들은 엄격히 선거 참여를 제한하지만 선거와 무관한 경범죄자들에게는 선거참여의 폭을 완화하는게 대부분 선진국들의 선거법 경향"이라고 말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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