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씨구, 조오타."…노래하는 버스기사 정상택씨

"…한 송이 떨어진 꽃이 낙화 진다고 설워 마라. …♬♪~.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구려."

16일 오후 대구 동구 팔공산 동화사 인근. 구성진 '창부타령'이 버스 안을 휘돌았다.

"얼씨구, 조오타." 흥겨운 추임새와 함께 버스 안 여기 저기서 손뼉 장단이 터져나왔다. 관광버스가 아니다. 대구 도심을 오가는 시내버스에서 매일 5차례씩 펼쳐지는 일상적 풍경이다.

대구 달서구 모다 아울렛과 동구 동화사 간을 오가는 급행 1번 버스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노랫가락과 폭소가 이어진다. 기분 좋은 웃음이 가득 찬 버스. 버스기사 정상택(53) 씨 덕분이다.

이런 풍경은 지난 2월 19일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와 함께 버스 배차가 '개별노선 전담제'로 바뀐 탓에 가능했다. 매일 마주치는 버스 기사와 주민들은 친근한 이웃이 됐다.

버스가 조용한 팔공산 동화사 부근에 다다르면 정 씨의 노래는 시작된다. 도심은 소음 때문에 오히려 승객들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어 피하는 편.

창부타령과 각설이 타령은 물론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트로트 메들리도 양념처럼 곁들여진다.

정 씨가 주는 건 노랫가락뿐 아니다.

"대신동입니다. 내리실 분은 준비하세요." "버스가 좌회전합니다. 차가 흔들리니 손잡이를 꼭 잡으세요."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네요. 동화사에 오르기에 좋은 날씨입니다. 친구들을 불러내서 같이 맑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을 즐기세요."

친절은 전염된다. 정 씨의 안내에 의아해 하던 승객들도 내릴 때가 되면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는다.

그가 버스 운전을 시작한 건 꼭 20년 전인 1986년. 고향인 경북 청도에서 영농 후계자로 꿈을 키웠다고 했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거금 600만 원을 대출받아 시작한 시설 원예가 꽃파동으로 큰 실패를 보고 말았다. 결국 정 씨는 1천만 원의 빚을 진 채 고향을 등졌다. "덕분에 천직이라고 느끼는 운전을 하게 됐으니 전화위복인 셈이죠."

승객들에게 먼저 인사를 하다 보니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인사를 하니까 어떤 아주머니는 막 냄새를 맡아요. '술 먹은 것 아니냐'면서. 또 어떤 승객은 '인사를 하길래 동네사람이라서 요금 안 받는 줄 알았다'나요. 하하."

정 씨는 틈틈이 환승 요령과 교통비 절약 방법을 승객들에게 전해준다.

"볼일을 보고 다시 급행1을 타면 요금을 또 내야 하잖아요. 그럴 땐 같은 구간을 다른 번호의 버스를 한두 코스 정도 탄 뒤 다시 급행1로 갈아타세요. 그럼 환승 무료 혜택을 받을 수 있답니다.

하루에도 7시간씩 운전을 하는 힘겨운 일상. 그가 친절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혀 끝에 정이 간다'고 하잖아요. 제게 월급을 주는 사람은 버스회사도, 대구시도 아닙니다. 버스에 요금을 내고 타시는 시민들이 바로 저의 사장님입니다. 종업원이 사장님에게 친절한 건 당연한 것 아닌가요."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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