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 다운증후군 아들 둔 서정환 씨

알록달록 이불에 곱게 싸여 신생아실에서 쌔근쌔근 잠자는 아기들. 이불 사이로 빠끔히 얼굴을 내민 채 하품하는 아기들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차례대로 놓인 침대 한쪽 끝에 지난달 세상 밖으로 나온 경섭이가 누워 있다. 링거 바늘을 머리에 꽂은 채.

경섭이는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지난달 21일 태어났지만 숨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결국 난 지 일주일 만에 심장 동맥관을 열어주는 수술을 받아야 했다. 엄마 젖이 그리울 터. 하지만 호스를 통해 우유를 먹을 수밖에 없다.

아기를 보며 웃는 부모들 사이에서 경섭이 아버지 서정환(44·달성군 다사읍 죽곡리) 씨가 서 있다. 얼굴이 흙빛이고 어깨는 축 처져 있다. 경섭이 상태와 집안 형편을 생각하면 울음이 터져 나오지만 억지로 참고 있는 듯했다.

다운증후군에다 심장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을 처음 전해들은 날, 서 씨는 자리에 주저앉아 버렸다.

"처음엔 아이가 밉기도 했습니다. 내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짐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어린 것이 2시간 가까운 수술을 버텨내는 걸 보니 그런 마음을 먹었던 게 미안해지더군요."

다행히 수술이 잘 끝났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경섭이 몸 상태를 봐 가며 돌이 되기 전 한 번 더 수술을 해야 한다. 심장에 난 구멍도 메워야 하고 좁아진 폐동맥을 뚫어줘야 하기 때문.

이미 수술비로만 250여만 원이 들어갔다. 2차 수술을 받으려면 400여만 원이 더 들지만 서 씨가 감당하기엔 버거운 액수. 그는 하루 종일 길거리 쓰레기를 줍는 일용직 노동자다. 7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다.

거리에서 추위·더위와 싸워가며 하루에 손에 쥐는 돈은 2만 원이 전부다. 기초생활수급권자로 지원되는 돈까지 합치면 100만 원 남짓. 이 돈으로 경섭이 병원비를 대고 딸 둘(10세·8세), 아들 하나(3세) 등 자식 셋을 뒷바라지해야 하는 형편이다.

게다가 아내(38)는 정신지체 장애인(2급)이어서 어렵고 힘들어도 기댈 나무가 되어주지 못한다. "아이가 우유 먹는다고 좋아하는 아내를 보면 갑갑하죠. 정신연령이 초등학생 정도일 겁니다.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혼자선 밖에 돌아다닐 수도 없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농촌에서 자란 서 씨. 시집오려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아내를 만났다.

답답할 때도 많지만 정을 붙이고 살았다. 덕분에 아이들 옷이며 아침밥을 챙겨 등교시키는 것은 서 씨의 몫. 아내는 제 몸 챙기기도 버겁다.

"정부에서 돈을 지원받는 형편에 이렇게 자식을 많이 낳은 게 죄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책임져야할 아이들을 외면할 순 없잖아요. 차라리 목숨을 버렸으면 할 때도 있지만 아이들이 눈에 밟힙니다."

서 씨는 매일 빗자루를 들고 거리로 나선다. 돈이 들까봐 참고 넘기다 고질병이 돼버린 무릎 관절염. 아이들 때문에 이를 악물고 견딘다. 이따금 보건소에 들러 파스를 얻어다 붙이는 것이 치료의 전부다.

경섭이를 낳은 뒤 서 씨는 담배가 늘었다. 평소엔 한 갑 사면 일주일 넘게 피웠지만 요즘은 채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담배를 사야 한다. 그나마 하얗게 피어오르는 담배연기에 잠시 시름을 실어 보낼 뿐, 아무리 고민해도 앞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른 아이들이 건강한 것은 다행이에요. 조금만 더 크면 서로 챙겨줄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아내와 경섭이는 제가 챙길 수밖에 없는데 점점 잘 해낼 자신이 없어지네요."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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