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지방선거 후보자 홍수…'변별력' 떨어진다

"니는 또 누고?"

대구 동구 효목1동에 위치한 한 노인회관에서 이 지역 광역의원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자 인사를 받은 김말순(68) 할머니가 반문했다. 할머니 손에는 후보자 명함이 무려 14개나 들려 있었다. 예비선거 운동기간 동안 후보자들이 이 노인정을 다녀간 횟수를 합치면 100여 회는 족히 된다고 한 관계자가 귀뜸했다.

이 노인회관에 나오는 회원 대다수는 기초·광역의원은 물론 구청장 선거에도 어느 당에서 누가 나오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후보자들에 대한 변별력이 사실상 전혀 없는 상태인 것.

이같은 현상이 일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각종 선거의 후보자가 홍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 단체장, 광역·기초 의원과 광역 단체장까지 합치면 유권자들은 수십 명 후보자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만 한다.

경북 영양군 일월면. 15명이 후보 등록을 신청한 기초의원 가 선거구에도 속하고 2명의 후보가 등록한 광역의원 1선거구에도 속한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 후보자가 17명. 여기다 7명의 영양군수 후보와 2명의 경북도지사 후보까지 합치면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원읍민에 노출된 후보자들은 26명에 이른다.

상황이 이러다 보니 유권자들은 시간을 따로 내 별도로 '공부'를 하지 않고서는 명확한 표심을 행사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후보자들에게 허용된 선거운동도 악수하고 명함 돌리는 수준에 그쳐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유권자들에게 인식시키는 불가능하다.

대구 동구에 출마한 한 광역의원 후보는 "한 예비후보 선거운동 기간 동안 유권자가 자신을 알아보는지 시험하기 위해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를 3번이나 가서 인사했으나 알아보는 주민이 없었다."고 말했다.

후보자들에 대한 변별력이 사라지자 조급해진 후보자들은 기호 결정을 놓고 불만들이 많다. 기초의원의 경우 후보자 기호결정 방식이 같은 정당에서 2명 이상의 후보를 내면 성명의 가나다 순으로 부여하도록 돼 있다.

유권자들이 앞 번호를 선호하기 때문에 '나' 와 '다'를 배정받은 후보자는 '가'를 배정받은 후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 이름 때문에 하위 번호를 배정받은 후보자들은 이번 선거는 정책대결이 아니라 '신 성(姓)대결'이라고 불만이다.

실제로 이와 관련해 1-나를 배정받은 수도권 지역 열린우리당 기초의원 A후보는 기호 결정 방식이 평등권과 공무담임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박상전기자 mikypar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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