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죽음과 함께 춤을

베르트 케이제르 지음·오혜경 옮김/ 마고북스 펴냄

어머니 뱃속에서 나면서부터 삶의 끝까지 사람을 쫓아다니는 죽음. 생명공학기술 발달이 생명연장의 꿈을 조금씩 실현해주고 있지만 죽음은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었고, 아직도 여전한 공포의 대상이다.

'삶과 죽음과 안락사에 관한 특별한 비망록'이라는 부제대로 책은 지은이 자신이 기록한 일기와 서신을 기초로 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한 요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인 지은이는 항상 죽음을 목격하고 있다. 세계에서 안락사를 가장 개방적으로 수용하고 있는 나라이기에 피할 수 없는 현실.

지은이는 삶의 끝을 바라보고 사는 환자들을 돌보면서, 그리고 직접 편안한 죽음(안락사)을 선사하면서 목격한 것들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제 곧 이승에서의 삶을 접어야하는 환자들은 영면의 순간을 앞두고 지나간 삶의 기억과 감정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이에 대해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마지막을 풀어나감에도 지은이는 결코 미화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과 함께 시간을 나누며 들은 이야기들을 사실 그대로 적어내고 있다.

환자들은 자신의 성장 배경이며, 결혼생활, 무슨 일로 병에 걸렸는지 등 사소한 것은 물론 중요하다 싶은 이야기까지 모두 들려주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장기간에 걸친 인간적 접촉을 보장한다는 네덜란드의 복지 체계 덕분인 듯. 그러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이 지은이에게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아름답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지켜주는 한편으로 인명(人命)을 끊음으로써 생기는 윤리적인 번민을 피해갈 수는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점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며 흔들리다가, 환자가 죽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말해주는 이웃의 증언에 날아갈 듯 홀가분해하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의사가 되기 전 철학을 전공한 전력만큼 지은이는 죽음을 단순히 기록만 하고 있지는 않다. 머리말에서 "정신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은 그 죽음을 의식하기 때문에 명백해진다."고 밝히듯 지은이는 여러 부분에서 '인간의 정신'이 갖고 있는 수수께끼를 파고든다. 때로는 성직자들과 종교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대체의학을 둘러싼 논쟁의 성격, 의료 행위에 포함돼 있는 과학적 내용의 빈약함, 암 연구의 실패, 일반인이 가지는 해부학적 개념에 대한 이해 수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해박한 지식과 섬세한 내면, 기발한 유머가 담긴 내용으로 이미 출간 당시 문학적으로도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은 책이기도 하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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