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朴槿惠) 대표 피습사건이라는 돌출변수의 등장으로 지방선거 유세전에 급피치를 올리던 여야의 촉수가 날카롭게 곤두서고 있다.
지방선거를 열흘 앞두고 터져나온 이번 사건이 '테러'라는 사안 자체의 성격 못지 않게 중반전으로 치닫고 있는 선거판세의 흐름에 중대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게 여야의 공통된 상황인식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야는 21일 하루 중앙당 및 서울시장 선거 유세일정을 '올스톱'한 채 모처럼 한목소리로 사건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한편, 각기 내부적으로는 이번 사건이 가져올 유불리를 따지며 향후 추이를 예의주시하는 표정이다.
수세국면의 반전을 노리던 열린우리당은 "엎친데 덮친격"이라는 표정 속에서 이번 사건의 부정적 여파를 차단하는데 주력하고 있고, 압도적 우위로 '독주'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당 대표의 피습사건의 충격파 속에서 가급적 언급을 자제하고 있으면서도 지방선거 압승에 대한 자신감을 더욱 높이고 있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사건 현장에서 취중 난동을 부린 인물이 우리당 기간당원이라는 사실이 새로 밝혀지면서 한나라당이 '조직적 정치테러' 가능성을 제기, 이번 사건의 배후 여부를 둘러싼 여야간의 공방이 한층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열린우리당 = 열세국면 탈출에 부심하고 있던 우리당은 그야말로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 그 자체였다.
불리한 판세를 만회하려면 특단의 반전카드가 나와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오히려 부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대형 '악재'가 터져 나왔다는게 우리당내의 주된 기류다. 특히 피습사건 현장에서 난동을 일으킨 박모씨(52세)가 우리당 기간당원인 것으로 드러나자 곤혹감을 더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다.
우상호(禹相虎)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선거판에서 호재가 아니면 악재이지, '중재'는 없지 않느냐"며 "이번주를 '반전의 주간'으로 삼으려고 했는데 상황이 더욱 꼬이게 됐다"고 한숨을 쉬었다.
우리당은 이에 따라 당분간 한나라당을 정면으로 겨냥한 전면적 대야공세는 자제하는 모양새를 취하면서 이번 사건이 몰고올 부정적 여파를 최소화하는데 주력한다는 입장이다.
우리당은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한 검.경의 철저한 진상규명을 '선제적으로' 촉구하고 초당적으로 대처하는 모양새를 취함으로써 정치적 의혹을 사전 차단하는데 힘을 쏟기로 했다.
정동영(鄭東泳) 의장이 이날 오전으로 예정된 제주도 유세일정을 보류하고, 강금실(康錦實) 서울시장 후보 역시 대학로 등지에의 유세활동을 취소한 것도 이런 맥략이다. 정의장과 강금실 후보는 특히 박대표의 쾌유를 비는 차원에서 조만간 '문병'을 간다는 계획도 밝혔다.
우리당은 다만 22일부터는 유세일정을 재개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오전 비공식 최고위원회의와 선대위 4차회의를 갖는데 이어 제주와 광주유세 일정에 돌입할 예정이다.
우리당은 그러나 이재오(李在五) 원내대표 등 한나라당 지도부가 제기하는 '조직적 정치테러' 주장에는 강력히 대응해나간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자기당 대표의 불상사를 놓고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태도는 박대표의 피습을 안타까워하는 국민조차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고 며 "한나라당이 이번 사건을 의도적으로 부풀리기를 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사기에 충분하다"고 비난했다.
중앙당과 주요후보 캠프는 이번 사건을 둘러싸고 당내에서 불필요한 발언이나 말실수가 나올 경우 상황이 더욱 불리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내부 '입단속'에도 주력키로 했다.
한편 조경태(趙慶泰) 의원은 "이 같은 일이 두번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권이 강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며 "행자부 장관과 관할 경찰서장 등 책임자에 대해서는 파면조치 등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 당 지도부는 일요 유세를 전격 취소한 채 최고위원회의와 의원총회를 잇따라 열어 박 대표 피습사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등 분주하게 움직였다. 선거유세차 지방에 내려가 있던 의원들도 모두 상경, 대책마련에 머리를 맞댔다.
한나라당은 선거운동 기간에 제1야당 대표를 겨냥한 이번 사건을 명백한 '정치테러'로 규정하고 검.경에 철저한 수사를 거듭 촉구했다.
한나라당은 특히 박 대표 피습 현장에서 난동을 부리다 붙잡힌 박모(54)씨가 열린우리당 서울시당 소속 기간당원으로 밝혀진 것에 주목하면서 정치적 의도 가능성과 함께 향후 미칠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의총에서 "단순히 야당 대표에게 정치적 위협을 가한 테러가 아니라 조직적이고 계획적으로 생명을 노린 정치테러"라면서 "박씨가 열린우리당에 매월 2천원씩 당비를 낸다는 것은 여당 기간당원이라는 얘기로, 이 사건의 범행동기와 배후 등 전모를 밝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또 범인 지씨가 술을 마시지 않았음에도 경찰이 술에 취한 것으로 발표한 것과 관련, 수사의 공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에게 이택순(李宅淳) 경찰청장의 해임을 공식 요구했다.
이번 사건을 국회 차원에서 다루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김기춘(金淇春) 의원은 의총에서 "행자위와 법사위를 긴급 소집, 관계장관들로부터 보고를 받고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다만 이번 사건의 배후 등이 규명되지 않은 상황에서 섣부른 예단이나 발언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자칫 '역공'을 초래할 수도 있다고 보고 '말조심'을 당부했다.
한나라당은 각 지역 선거대책위원회와 후보자에 공문을 보내 박 대표의 뜻에 따라 최선을 다해 선거운동에 임할 것을 당부하면서 ▲로고송 및 율동 자제 ▲범행 배후 언급 삼가 ▲이번 사건을 둘러싼 유불리 논의 금지 등을 특별 지시했다.
이런 가운데 각 후보 진영은 박 대표 없는 선거유세가 향후 판세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에 적잖이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박 대표가 지역을 한번 방문할때 마다 지지율 올라가는 것이 보인다"는 한 당직자의 말 처럼 연예인 못지 않은 박 대표 개인의 인기가 당 지지율 및 득표에 상당한 영향을 미쳐 온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핵심 당직자는 "유세장에서는 박 대표를 대신할 사람이 없다"면서 "각 시.도 당에 지원유세 인물로 누구를 원하는지 의견을 보내달라고 지시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재원(金在原,경북 군위.의성.청송) 의원과 해당 지역구 당직자들은 '박 대표의 쾌유를 빕니다'는 문구를 담은 리본을 패용, 눈길을 끌었다.
◇민주.민노.국중당 = 민주당은 오전 선거대책위원장단 회의를 열어 박 대표 피습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함께 재발방지책 마련을 촉구했다.
한화갑(韓和甲) 대표는 완도유세에서 "민주화가 되고 나서 선거운동 기간에 피습당한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면서 "나라가 이 정도로 '나사'가 빠져있다"며 국가 '기강해이'를 질타했다.
민주노동당도 진상규명과 함께 박 대표의 빠른 쾌유를 거듭 기원한 뒤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김종철(金鍾哲) 서울시장 후보를 비롯한 수도권 광역단체장 후보 3명의 공동공약 발표와 각 지역별 유세는 예정대로 진행했다.
여의도 당사에서 긴급 당직자회의를 연 국민중심당도 이규진(李揆振) 대변인 논평을 통해 "범인중 한명이 우리당 당원으로 밝혀진데 대한 책임을 촉구한다"며 "국회 행자위를 소집해 치안부재 상황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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