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와 함께 살아온 게 벌써 50년째다. 중학교 시절부터 선수로 뛰기 시작, 국가대표까지 해봤고 감독으로도 활약했다. 이제는 언론 칼럼니스트이자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체육학 석사학위를 따 대학에서 야구강의를 한 적도 있다. 각종 야구 기록도 세웠으며 특히 대구상고 야구부를 맡았을 때는 전국 고교대회를 잇따라 석권해 감독으로서 명성을 한껏 높이기도 했다. 야구에 관한 한 누구에 못지 않을 화려한 경력을 쌓아온 셈이다.
대구 출신의 강태정(62) SBS 해설위원이 그 주인공.
부인 박세연(58) 씨도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 출신이며, 슬하의 두 아들 중 맏이 역시 중학교 때 야구선수로 활약했었으나 아버지의 설득으로 지금은 회사원으로 생활하고 있다. "야구로 살아가려면 특출하게 잘해야 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빨리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강 위원의 소신 때문이었다.
대구 동인동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난 그는 삼덕초등학교를 거쳐 대구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야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1957년, 실업팀 야구선수였던 큰 형에게서 당시로서는 귀했던 야구 글러브를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게 계기가 됐다고 한다. 친구들과 학교 운동장에서 야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체육선생님이 교장을 설득, 야구부를 창단하게 됐던 것.
대구상고 야구부로 스카웃됐으며 63년 졸업과 함께 상경, 실업팀인 제일은행 야구팀에 들어갔다. 이후 한국전력으로 옮겼으며 군 생활은 육군 야구부에서 했다. 국가대표 선수로도 9년간 활동, 67년에는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컵을 차지했다. 주로 2루수와 1번 타자로 활약했다고 한다.
동대문 야구장 장내 아나운서를 하던 부인을 만나 72년 결혼했고, 이듬해엔 선수생활을 접고 대구상고 감독을 맡아 대통령배, 봉황기, 황금사자기를 모두 휩쓸었다.
이어 건국대 감독으로 스카웃됐으며 이를 계기로 이 대학 체육학과에 편입, 중단됐던 대학(경북대) 생활을 다시 시작했고 76년 동국대 대학원 체육학과에서 석사학위까지 받았다. 당시 감독으로 바쁜 와중에 몇몇 대학에 강의를 나가기도 했다.
80년엔 한국화장품 감독으로 옮겼으며 프로야구 시대가 열리자 86년 청보 핀토스, 뒤이어 태평양 돌핀스 초대 감독을 맡았다. 2년 만에 감독직을 물러나 일본으로 야구 연수 길에 올랐다.
프로야구에서는 그다지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데 대해 "선수 개개인별로 능력 차가 워낙 커 좋은 선수를 스카웃하는 게 더 중요했던 것 같다."고 회고했다.
일본에서 귀국한 90년대 초반부터는 언론사 칼럼리스트, 몇몇 방송사의 해설위원으로 활동해 왔다.
서봉대기자 jinyo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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