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재왕 기자의 인물산책] 홍익대 주성태 교수

경기도 과천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달부터 의미있는 기획 전시회를 하나 하고 있다. 6전시실에서 오는 7월 30일까지 100일간 개최하는 '주경 탄생 100주년 기념전'. 근대 미술의 개척자로 대구화단을 대표했던 바로 그 주경 선생으로 현대미술관이 선생을 재조명하고 재평가하는 의미를 담아 전시회를 마련했다.

◆첫 대규모 전시회=전시회장에서 주경(1905~1979) 화백의 둘째 아들로 홍익대에서 판화와 건축미술을 강의하는 주성태(朱星泰·60) 교수를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들었다.

주경 선생은 생전에 개인 전시회를 딱 두 번 했다. 1974년 선생이 고희(古稀)를 맞았을 때 문화예술진흥원 화랑에서 개최된 회고전과 2년 뒤 대구 맥향화랑에서 열린 초대개인전이 그것이다. "당신 작품에 대해 '누가 보고 누가 평가하냐'고 할 정도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이 개인전을 하지 않은 이유"라는 주 교수의 설명이다.

선생의 작품 54점을 ▷초기 ▷일본 유학기 ▷귀국 후 시기 ▷추상작품 등으로 나눠 미술관련 희귀 자료와 함께 전시한 '대규모' 전시회는 이번이 처음. 유족과 현대미술관, 삼성미술관 리움, 개인소장가 등이 출품했다. "항상 어깨를 짓누르던 무거운 짐을 내려 놓는 기분"이라며 홀가분해 하는 주 교수는 "대구에서도 가능하다면 비슷한 전시회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대구와 우연한 인연=서울 태생으로 일찍 동경 유학을 한 선생은 대구와 우연히 인연을 맺게 됐다. 한국에서 활동하다가 1943년 일본으로 가는 길에 친구를 만나러 잠시 대구에 들렀다가 계성중 공작교사가 돼 대구에 눌러 앉았다. 광복 직후인 1946년 경북공립여중(현 경북여고) 교감과 경주중 초대교장을 거쳐 경북도교육청 장학사를 지냈다.

또 선생은 함께 유학한 서양화가 이인성 선생 등과 함께 경북미술협회를 만들고, 경북미술학원을 운영하며 미술지망생을 가르치는 등 대구·경북 미술계에 끼친 공로가 컸다. 대구·경북 미술계에서는 "대구화단의 주요 흐름인 구상적 경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선생을 평가한다.

◆추상화가냐 구상화가냐?=선생에게는 우리나라 최초의 추상화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1923년에 '파란'과 1930년에 '생존'이란 추상화를 그렸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1972년 기획한 '한국 근대미술 60년전'에 '파란'과 '생존'이 출품된 것. 이구열 한국근대미술연구소장은 "그 전시에 40~50년 전 추상화가 나타난 것은 실로 큰 사건이었다."면서 "참으로 믿기 어려운 전위적 서구풍의 그림이었다."고 회상했다.

주 교수는 그러나 "당신의 작품을 전체적으로 보면 구상작가이지 추상작가라고 분류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추상화는 일종의 실험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예술혼을 물려받은 아들=마흔 다섯 살 나이에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 판화를 공부한 주 교수에 대한 얘기로 넘어갔다. "여유가 있어 (일본에) 갔던 것은 아닙니다. 대학에서 건축미술을 공부하고 건축설계사무소에서 근무했습니다. 나이가 드니 싫어지더라고요. 수주를 위해 로비가 필요하고…. 다른 인생을 살아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저질렀죠."

그래서 그는 선친이 다녔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 진학, 판화를 공부했다. 60년만에 부자가 남의 나라 미술대학의 동문. 이화여대 동양화과를 졸업한 아내 홍영희(59) 씨는 민속예술을 공부했다. 선친의 제자로 알게 된 범삼공(현 BSG) 홍재선 명예회장의 맏딸이다. "아내에게 항상 미안합니다. 장인 어른이 남자는 도둑놈이라고 말씀했다는데 선생님(주경 화백) 아들이 도둑놈일 줄 몰랐다고 해요. 허허."

부부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성냥갑만한 4층 건물에서 산다. 4층은 집, 3층은 영희 씨 아뜰리에, 2층은 성태 씨 아뜰리에다. "건축예술을 한 것도 순수예술로 넘어 온 것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팔자거니 숙명이거니 하고 살고 있습니다. 가치관이라는 게 객관적으로 설득력이 있어야 하는데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경우도 더러 있습디다."

◆14일부터 판화 전시회=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동림리에 있는 마가미술관에서 14일부터 내달 10일까지 '한일 현대판화의 구상전'이 열린다. 주 교수와 무사시노 미술대학 시절 지도교수였던 이께다 료지(池田良二) 교수 등 한·일 양국의 판화계 거장 10명의 국제 교류전이다. 작품 하나 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주 교수는 일본 판화협회 정회원이다. 한국 사람 가운데 유일하다. 일본 작가들도 준회원에서 정회원이 되는데 보통 15년이 걸린다고 한다. 91년부터 98년까지 일본에서 공부하며 작품을 다수 출품하고 수상한 경력을 대접한 것으로 그는 추측한다.

주 교수의 작품 경향을 묻자 "제가 제 작품을 얘기하기 뭣하지만 구상 비구상을 넘나들고 있다고 보면 맞을 것"이라면서 "종교적 색채가 진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으나 꼭 그렇지는 않다."고 말했다.

◆선친 유작 단 1점도 팔지 않았다=부부는 경제적으로 여전히 여유가 없다. 대가의 아들과 부잣집 딸로 뵈지 않는다. 주 교수는 "둘 다 먹고 살기 힘든 일만 하고 있다."며 "쟁이들 가운데 잘 먹고 사는 사람은 유사 이래로 없다."고 했다. 남들이 보면 그림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죽을 지경이라는 것.

하나밖에 없는 딸이 중앙대 음대에서 플룻을 전공, 지금은 독일 뮌헨음대 최고연수자과정으로 유학하고 있다. 국가장학금을 받아 학비가 없고 집세가 보조돼 부모로서 고맙다.

그러나 그들은 선친의 작품을 지금까지 단 1점도 팔지 않았다.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사간 '편물하는 여인'도 이 전 회장이 선친에게 직접 사갔다고 한다.

주경 화백의 그림은 요즘 꽤 비싸다. 하지만 주 교수는 앞으로도 팔 생각이 없다. 보관상 어려움이 있어 막연하게나마 해결책을 찾고 있다. 공인된 기관에 기증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기자에게 들었다.

최재왕 서울정치팀장 jw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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