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또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하기에 넉넉하고, 국토의 위치와 기타의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또 1차·2차 세계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새로 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의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배우로 세계의 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양식의 건립과 국민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해서 자유의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이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할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김구(1876~1949)
황해도 해주 출생. 1893년 동학 입교. 1896년 일본 군인을 살해해 사형이 선고됐으나 고종의 특사로 감형, 탈옥. 신민회에 가담했으며 3·1운동 직후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 주석을 역임했고 한인애국단 창단, 광복군 총사령부 창설 등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외세에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누구의 삶이 평탄할까마는 백범 선생의 인생은 그야말로 파란만장하다. 동학의 접주가 돼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다가, 명성황후의 원수를 갚고자 일본군 중위를 살해해 사형수가 됐다가, 탈옥해서 승려가 됐다가, 교사가 됐다가 다시 투옥되고, 망명해 임시정부 조직에 참여하고, 항일무력활동을 지휘하다가 독립 후 귀국해 암살범에 의해 쓰러지기까지 선생의 삶은 참 고단했다. 그럼에도 그저 '민족의 한 분자인 못난 사람'이라는 뜻으로 백범(白凡)이라는 호를 쓰며 언제나 반성하는 자세를 가졌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는 '백범일지'의 끝부분에 실린 '나의 소원' 가운데 한 장이다. 그 속에 담긴 선생의 민족철학이 오늘날에도 의미를 잃지 않고 있음이 놀랍다. 하지만 선생의 철학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백범일지를 통독하는 것이 옳다. 태어나면서부터 조국에 돌아온 뒤까지 선생의 행로와 사상, 사건과 단상들을 따르다 보면 찬탄이 절로 날 것이다. 넘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자신을 털어놓는 글쓰기의 묘미도 배움직하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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