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국인 생생 여행체험] 지리산 바래봉·실상사

캠퍼스 봄 축제 둘째날 밤, 베트남 음식을 준비하고 있는데 부이 판 안트(26.영남대 한국문학 박사과정) 선배가 여행을 떠나자고 한다. 매일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외국인 여행체험이라고 했다. 듣자마자 고개를 끄덕였고 주말 여행의 기분에 들떴다.

목적지는 지리산 바래봉(1천165m) 철쭉군락지. 지리산. 익숙한 지명인 것 같아 기억을 더듬어보니 얼마 전 친구 집에서 본 기념 손수건에 그려진 산이었다.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유명한 산이라는 말을 듣고 꼭 한번 가고 싶었는데 때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

대구여행자클럽(www.tour1144.com) 회원들과 함께 20일 오전 7시 대구 동아쇼핑 앞에서 출발, 오전 10시쯤 지리산 자락 운봉면 용산마을에 도착했다. 바로 등산을 시작했다. 수많은 등산객들로 붐볐고, 등산로 양 옆의 분홍빛 철쭉은 봄 기운을 만끽하게 했다. 베트남에선 전문 산악인들을 제외하곤 거의 등산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선지 한국의 등산문화가 부럽기도 했다. 베트남 북부 산악지역에는 높은 산이 있지만 남부지역은 낮은 평지인데다 대부분 국민들이 먹고 살기도 힘들어 등산은 꿈도 꾸지 않는다.

태어나 처음 해 본 등산치고는 마음이 상쾌했다. 주말 나들이 겸 한국의 산을 제대로 구경한 것 같아 기쁨은 두 배였다. 철쭉군락지와 바래봉 정상 인근에서 오손도손 모여 정성스레 준비해 온 점심을 나눠먹는 모습도 평화스러워 보였다.

점심은 김밥. 간편한 먹을거리로는 먹기에 딱 좋았다. 철쭉군락지 주변에서 신문지로 자리를 깔고 떡, 오징어 등과 함께 김밥을 두줄씩 먹었다. 베트남에선 도시락 문화가 발달돼 있지 않아 야외로 나가면 대부분 현지에서 먹을 것을 해결해야 한다.

함께 등산한 안트 선배는 산행도중 내내 인기를 끌었다. 너무 쉽게 생각했던 터라 꽃무늬 치마에 샌들을 신고 왔기 때문. 산 정상 부근에 올라가자 아저씨들은 "대단하다. 어떻게 그 복장으로…."라며 눈이 휘둥그래졌고 나이든 아주머니들은 "아이고, 아가씨가 치마입고 여기까지 올라왔네."라며 안타까운 눈길을 보냈다.

안트 선배는 "괜찮아! 다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지리산의 좋은 경치를 구경했으니까 이 정도는 힘들어도 참아야지."라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2시간 30분만에 바래봉 정상에 올랐다. '바래봉'이라 적힌 푯말 앞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너무 사람들이 많아서 사진을 찍기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산 정상을 밟은 기분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높은 산을 오른 것자체가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내 자신을 이기고 산꼭대기에 올랐다는 성취감으로 짜릿했다. 하지만 내려오는 것은 또다른 고통의 시작이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중심을 잡기가 힘들었기 때문. 하지만 샌들을 신고 온 안트 선배 때문에 다리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할 형편도 되지못했다.

하산한 다음 행선지는 신라시대 옛 고찰인 실상사였다. 주변 풍경이 인상적이었다. 실상사는 계곡을 지나 마을같은 조용한 평지에 위치한 아늑한 정원같은 절이었다. 크지는 않았지만 신비하고 고즈넉한 느낌이었다.

가운데 부처님과 염라대왕 등을 모시고 있는 산신전은 볼수록 흥미로웠다. 원목으로 지은 집이고 지붕까지도 나무로 섬세하게 조각했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나무로 지은 절 건물과 어우러져 한국적인 옛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오른쪽 약사전에 있는 커다란 돌 부처상은 조각 모양이 베트남과 비슷했다. 여러 국가로 전파된 불교도 건물양식, 예불 등의 방식은 다르지만 기본적인 불상형태는 유사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8월이면 베트남으로 돌아간다. 그 전에 지리산 바래봉과 실상사의 아름다운 모습을 가슴에 담아둘 수 있어 행복했다. 지리산 철쭉은 '원더풀 코리아' 그 자체였다.

트랑 황 호이(22.영남대 한국학과 교환학생)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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