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왜곡 작업인 '동북공정'을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 중인 중국이 일본에 있는 발해국 석비(渤海石碑) 반환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28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러·일전쟁 후 일본이 전리품으로 가져온 발해국 석비 '홍로정비(鴻■井碑)' 공개와 반환 요구가 올 들어 중국에서 제기됐다. 이 신문에 따르면 '홍로정비'는 당(唐)이 발해국 국왕에게 '발해군왕(渤海郡王)' 의 지위를 주고 당과 발해가 군신관계를 맺은 사실을 기록한 비석이다.
가로 3m, 세로 1.8m 크기의 이 비석은 원래 오늘날의 랴오닝(遼寧)성 뤼순(旅順)시에 세워졌다.
일본방위연구소 도서관 소장 '메이지(明治) 37, 38년 전역전리품 기증서류'에 따르면 일본 해군이 러·일전쟁 격전지였던 뤼순에서 일본으로 가져와 전리품으로 일왕에게 바쳤다.
'국유재산'으로 분류돼 현재 도쿄(東京) 시내 황궁내 후키아게(吹上)정원에 보관돼 있다. 출입이 규제돼 있어 사진 제공요청에는 응하기도 하지만 공개는 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월 다롄(大連)대학 왕위랑(王禹浪) 교수 등이 다롄시 정치협상회의에서 발해 석비연구 촉진을 제의했다.
왕 교수는 "사람들이 발해 석비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롄일보는 지난 3월 이 석비에 관한 특집기사를 게재하면서 "국보반환을 위해 단결해야 한다." 는 의견을 소개하기도 했다. 뤼순시에서는 이 석비 전시관건설계획도 제기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北京) 학자들이 2004년에 설립한 '당홍로정비연구회' 관계자는 "석비연구협력을 추진해 중·일우호관계를 발전시키고 싶다."며 성급한 반환요구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이면서도 연구에 일본의 협력을 촉구했다.
아사히는 중국이 이 비석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는 발해 이전 이 지역에 있던 고구려 역사를 둘러싼 한국과의 논쟁이 자리잡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의 입장에서 볼때 이 석비는 "발해국은 당의 지방정부로 중국 역사에 속한다."는 것을 증명하는 유력한 물증이 된다는 것.
도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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