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켜만 준다면 총리 자리도 거뜬히 치러낼 만한 똑소리 나는 후배 여기자가 있었다. 그 힐러리 같은 똑순이가 처녀 시절 총각(남편)에게 홀딱 속아서(?) 시집을 가버린 사연은 딱 한 가지, '공약' 때문이었다.
여왕 같았던 그녀를 단숨에 사로잡은 문제의 결혼 공약은 '나와 결혼만 해주면 저 푸른 초원 위에 목장을 만들어 알프스의 소녀처럼 살게 해주겠다'는 꿈 같은 유혹. 그러나 공약 작전으로 그녀를 낚아챈 남편은 목장은커녕 염소 한 마리도 키워보지 않은 채 평생 월급쟁이로 명예퇴직했다. 그나마 주위로부터 모범 가정이란 부러움을 샀으니 망정이지 목장 어쩌고저쩌고는 공약(空約)으로 끝난 셈이다.
결혼 공약과 선거 공약은 일단 거창하고 그럴싸하다는 점과 감성이 개입되면 의미가 없어진다는 점에서 닮은 구석이 있다. 모레 치러질 5'31 지방선거도 말로는 공약과 인물'정책을 보고 뽑자고는 하지만 정작 분위기는 공약이나 인물보다 어느 당(黨)이 많이 미우냐 덜 미우냐는 감성적 잣대로 흘러가고 있는 분위기다.
마치 사랑에 빠지고 나면 공약의 옳고 그름은 눈에 보이지 않고, 뻔한 헛된 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목장형 결혼 공약과도 같다. 후보들의 공약을 놓고 타당성, 구체성 하며 평점을 매기고 있는 언론들의 공약 평가도 크게 믿을 건 못 된다. 공약(公約)이 공약(空約)이 되고 안 되고는 심사위원의 탁상 추리가 아니라 그 공약을 실행하는 주체(후보와 해당 자치단체와 의회)의 창의성과 발상(發想)의 크기와 방향에 달린 것이기 때문이다.
심사위원들의 창의성과 발상(發想) 선에서 볼 때는 불가능하거나 허황해 보이는 공약도 주체의 창의성과 발상 수준, 의지가 두드러지면 실현 가능성은 달라지는 것이다. 콜럼버스의 달걀이나 정주영의 유조선 물막이 공사 발상 같은 것이다. 더욱이 지방선거의 공약은 후보마다 도토리 키 재듯 중복 아니면 엇비슷하거나 고만고만한 공약들이다. 솔직히 선거가 이틀 남은 지금까지도 길거리에 어지러이 나붙은 현수막 주인공들의 구체적 공약이 무엇인지 훤히 꿰고 있는 유권자는 전무하다.
더구나 공약 중심으로 뽑자고 말들은 하면서도 정작 대구'경북의 표심들은 당(黨)을 따지고 드는 분위기다. 어느 지역신문사 여론조사 경우 공약과 인물 됨됨이나 능력 등 항목에서는 누구누구가 더 낫다고 하면서도 소속당이 못마땅해서 안 찍겠다는 응답이 56%나 된 것이 그런 분위기를 말해준다. 공약 무용론이 나올 만한 '공약 선거'의 현주소다. 그렇다면 정서에 빠져 공약 비판과 무용론을 말하는 유권자들은 과연 얼마나 민주시민으로서의 공약을 지키고 있는지도 한 번쯤 돌아보자.
우리 사회에서 공적인 약속의 신뢰가 흐트러진 지는 오래다. 정치인들 공약만 입방아 찧을 처지가 못 된다는 뜻이다. 작은 길거리 질서 약속 하나만 해도 거의 실종 상태다. 무단 점유 막무가내 시장판을 벌여놓고 꼬박꼬박 점포세 내고 영업하는 이웃 가게 주인 등의 영업에 피해를 주는 무질서는 기본이 됐다. 걸핏하면 시청 앞마당을 점거하고 시장이 출근도 못하게 만드는 무질서도 시민사회 안에 서로의 공익을 지켜주는 공약이 깨진 증거다. 공권력을 존중하지도 않고, 공권력 스스로 공적 책임과 의무를 소홀히 하는 무질서한 사회가 선거에서도 공약보다는 정서로 흘러가 버리는 원인이 된지도 모른다. 당장 내일모레 투표율도 잘 돼봐야 50% 내외로 내다보고 있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공적 약속이다. 서로서로 위아래 작은 공약부터 지키자. 지금 대한민국 축구만 희망찬 '대~한민국'이고, 9년 만에 경상적자로 돌아선 경제와 뺨만 맞고 있는 대북 외교, 테러와 내분만 일삼는 정치판, 무질서가 판치는 사회는 말꼬리에 힘이 빠지는 '대한민국~'이 돼 가고 있다.
이번 선거부터 공약이 죽어가는 '대한민국~'을 약속이 살아숨쉬는 희망찬 사회, 힘찬 '대~한민국'으로 만들어 보자.
김정길 명예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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