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설거지를 끝낸 며느리와 손자를 재우고 나온 시어머니가 TV 앞에 나란히 앉아 일일연속극을 보고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화면에서 고부간의 갈등 상황이 배우들의 능청스런 연기로 심각하게 전개 되고 있다면, 그 거실의 불빛이 아무리 단란하게 쌓여도 시어머니는 십중칠팔 '저 며느리가 저렇게 시어머니를 홀대하니 틀림없이 벌을 받을 거야'라는 생각에 젖기 쉽고, 반대로 며느리는 또 '저 시어머니가 저렇게 며느리를 구박하니 이제 곧 박대 받는 장면으로 이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써 가지 않을까요?
살아있는 인간의 모임에는 언제나 수많은 욕망과 생각의 차이들이 뒤섞여 있게 마련입니다. 그 욕망과 생각들의 모서리가 날카롭게 부딪칠 때,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입장에서 자기 생각의 옳음을 주장하게 되지요. 그런데, 그 어느 주장도 정말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어딘가 미진한 구석이 있고, 또 절대적으로 옳지 않다고 반박될 수도 없는, 나름대로의 절절한 사연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삶의 상황은 언제나 복잡한 것 같습니다. 하기야 이 지상에 복잡하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습니까? 어쩌면 문제가 없는 삶이 되려 문제이지요.
갈등을 해소하는 말 걸기의 방식으로 가장 비열한 것이 권력에 의존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권력에 의지한 발언은 상대방의 생각이나 주장을 그냥 면도날로 싹둑 잘라버리는 폭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지요. 임지현의《우리 안의 파시즘》이라는 책을 보면, 옛 소련 사회 내부의 의식이 극명하게 드러나는 예화로서 '두 지식인의 화분 싸움'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습니다.
'연극극장 지배인인 루스라노프와 포포프는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았다. 루스라노프는 포포프가 자기 집 베란다에 내놓은 화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루스라노프는 친구인 동네 파출소장을 찾아가 화분을 치우라는 명령서를 포포프에게 발부하도록 청탁하였다. 화가 난 포포프는 친구인 시 경찰국장을 찾아가 화분을 치우라는 명령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루스라노프는 다시 친구인 내무장관을 찾아가 화분을 치우라는 명령서를 받아냈고, 포포프 역시 친구인 국방장관을 찾아가 내무장관의 명령을 취소시켰다. 최후의 승자는 소련의 국가 원수인 칼라닌에게서 화분을 치우라는 명령서를 받아낸 루스라노프였다.'
합리적 의사소통의 길을 아예 접어두고 개인적 연줄로 권력을 끌어와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 정말 가관입니다.
김동국(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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