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시비비 코너] 동국대 강정구 교수 유죄 판결

'6.25는 북한에 의해 시도된 통일전쟁'이라는 발언을 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정구 동국대 교수가 지난 26일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를 두고 진보와 보수 계열의 극단적 대립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강 교수 관련 논쟁은 그의 발언에서 촉발돼 우리 사회에 광범위한 대립과 충돌을 불러왔지만, 이번에는 법원 판결을 둔 논란으로 축소된 감이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 진보와 보수의 이념 논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은 유념해야 한다.

▶법원 판결 내용=서울중앙지법 재판부는 강 교수가 2000년 10월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각종 매체에 기고한 글과 토론회 발표 내용 8건 및 강 교수의 기타 저작들에 대해 "냉철하고 합리적인 학문적 화두가 아니라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친북 주장"이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북한의 대남 적화혁명론에 동조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주장으로 국가의 존립과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선동적 표현을 한 데 대해 엄격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징역 2년을 선고했다. 다만, 그런 주장을 논쟁으로 바로잡을 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므로 유죄 선고의 상징성만 살려 집행을 3년 유예했다. 이번 판결은 실형 선고 부분에서 보수 진영의, 집행 유예 부분에서 진보 진영의 환영을 받고 있지만 사상의 위험성과 우리 사회의 건강성에 대한 측면을 놓고 보면 어느 쪽도 법원의 입장에 동조하지 않는다.

▶국가의 존립을 위협하는 사상?=보수 입장에서는 북한의 실제적인 위협 상황을 앞세운다. '잠재적 테러범', '반미·친북 흥행업자', '사이비 학자' 등의 공격을 마다하지 않는다. '권력과 유착한 좌파세력의 대한민국 정통성 부정으로 시작된 이념 내전(內戰)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 사회가 민주적 기본질서 수호에 자신감을 갖고 있다고 단정하기 어렵다.(중략) 이번 판결은 국보법 폐지 주장의 허구와 위험성을 거듭 일깨운다. 북한이 헌법보다 상위에 있는 노동당 규약에 '적화통일'을 명시하고 있는데도 국가의 정체성을 부인하고 법치를 흔드는 친북 좌파의 행태를 보고만 있어야 하는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한번쯤 자문해 봐야 한다.'(신문 사설)

'뉴라이트전국연합 대표를 맡고 있는 중앙대 제성호 교수(법학)는 "지금도 친북 사회주의 세력이 확산중이고, 결정적인 시기를 엿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사상의 시장은 당연한 얘기지만 기본적으로 대한민국의 체제, 가치, 이념에 대한 긍정이 바탕 돼야 한다."며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가겠다는 합의를 하지 않은 사람은 결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신문 기사)

이에 대해 진보 진영은 남북한을 사이에 둔 이념 논쟁이 사실상 영향력을 상실한 상황이므로 이를 근거해 유죄를 선고한 것은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재판 결과는 탈냉전의 21세기에 와 있는 우리 사회가 아직도 20세기의 냉전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송두율 사건이 그러했듯이 이 사건 역시 언론의 선동적인 태도가 결국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큰 재산인 학문·사상의 자유를 우리 사회가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중략) 이미 공개된 구 소련의 문서들을 통해서 한국전쟁이 북한 지도부의 계획적인 침공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남북한 사이의 이데올로기적 경쟁 역시 대한민국의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통해서 더 이상 거론할 필요가 없는 결론에 도달해 있다. 그러나 학문적인 부분을 사법적인 잣대로 판단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의 체제적 우월성을 스스로 부인하는 결과에 다름 아니다.'(신문 칼럼)

▶건강해진 사상검증 능력?=보수 진영에서는 아직도 학계나 대학에 무제한의 사상검증을 맡길 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고 보긴 이르다고 비판한다. '지금 우리 대학사회의 문제는 강 교수처럼 학문을 가장해 대한민국의 국가 정체성과 역사적 정통성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반미·친북 흥행업자들을 걸러낼 학문적 여과 능력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이번 판결이 기대한 것처럼 우리 대학사회가 강 교수 같은 사람들의 비학문적 선동주의를 걸러낼 만한 자정 능력을 키워야만 사이비 학자들이 대학 안에서는 학생을 오도하고 대학 밖에선 시민단체를 휘젓고 다니는 빗나간 풍토를 바로잡을 수 있는 것이다.'(신문 사설)

그러나 진보 진영에서는 "이번 판결의 대상은 애초에 법적인 잣대로 재단할 수 없는 학자의 연구 결과 또는 학자적 의견에 관한 것인데 여기에 사상 검증을 하고 국가보안법이라는 악법을 들이댄 것은 시대착오"라고 비난한다. 또한 우리 사회는 충분히 건강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문제들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한 시기라고 규정한다.

'서울대 최갑수 교수는 "우리 사회의 사상적 체력은 과거보다 훨씬 튼튼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잠복해 있는 문제를 들춰내 사회를 진보적인 방향으로 추동하는 학계의 능력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지적했다.(이는 사상의 자유를 저해하는 것으로 손꼽히는 국가보안법 개폐 문제로 연결된다.) 이화여대 김수진 교수는 "우리 사회는 이 같은 주장을 사상 토론의 장에서 격파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건강하다"며 "민주주의 완성의 시기에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므로, 실정법으로 강 교수를 처벌할 수 있다면 실정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신문 기사)

한 걸음 나아가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논의가 생산적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과연 국론 통일을 위한 사상 재판을 한다고 해서 그것이 북한 현실에 대한 생산적인 논의를 도울 수 있을까? 차라리 대북 교류를 넓혀 북한의 현실과 모습이 궁금한 이들에게 스스로 연구를 해서 판단을 내리게 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고 자유민주주의답지 않을까? 남·북의 출판물 교류, 주민들의 자유 왕래, 사상·표현의 자유만이 우리를 냉전적 야만의 잔재로부터 구출해줄 수 있을 것이다.'(신문 칼럼)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 강정구 교수 사태 일지

▶2001년

8월 강 교수 방북 도중 만경대 방명록 사건 발생

9월20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

10월11일 보석 석방, 공판 무기 연기

▶2005년

7월27일 강 교수 '6.25는 통일전쟁' 칼럼 기고

8월22일 보수단체, 강 교수 검·경 고발

10월12일 검찰, 구속수사 의견 보고. 천정배 법무장관, 불구속 수사지휘권 발동

10월14일 김종빈 검찰총장 사표 제출

12월23일 검찰, 강 교수 불구속 기소

▶2006년

2월3일 강 교수, 공판 재개

2월8일 동국대, 강 교수 직위해제

3월7일 법원, 직위해제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기각

5월26일 1심 유죄 선고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