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 영화-구타유발자들

'귀신보다 더 무서운 게 사람?'

영화 '구타유발자들'은 그 메인 카피가 암시하듯 현대인의 불안감을 여지없이 이용하고 있다. 폭력에 길들여진 인간은 이미 모든 결론이 폭력으로 귀결될 것이라는 지레짐작에 극도의 공포를 느끼고, 그렇게 단초를 제공한 폭력은 멈춤없이 다시 폭력을 낳으며 악순환의 고리를 이어간다. 늦가을을 배경으로 8명의 배우가 5시간 동안 일어난 일을 스크린으로 옮긴 영화가 관객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은 결국 현실 속 폭력의 구조와 혼돈이다.

성악과 교수 영선이 흰색 벤츠에 제자 인정을 태우고 호젓한 교외로 드라이브를 하며 영화는 시작한다. 사람 한 명 없는 스산한 강가에 차를 세운 영선은 서서히 인정에게 엉큼한 속내를 드러낸다. 이에 놀란 인정은 벤츠에서 겨우 탈출해 숲으로 도망친다. 영선은 설상가상으로 그의 벤츠가 웅덩이에 빠져 옴짝달싹 못하는 사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며 비호감 사내들이 다가온다.

한편 길을 헤매던 인정은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봉연을 만나 버스 터미널까지 데려다달라고 한다. 친절해 보이는 시골청년 봉연이 영선을 데려간 곳은 교수 영선이 있는 스산한 강가.

본색을 감춘 비호감 사내들은 영선과 인정을 반강제로 '떡삼겹 파티'에 초대하지만 인정은 이 상황이 반갑지 않다. 결국 그녀가 던진 말 한마디가 그만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게 한다.

그것이 이유도 없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폭력의 시작이다. 그리고 사건이 진행되면서 영화는 피해자와 가해자의 경계선을 무너뜨린채 폭력이 난무한다. 왕따라서 때려야하고, 왕따를 당했기 때문에 다른 누군가를 왕따시킨다. 의도하지 않은 폭력, 오해가 부르는 폭력 등 이유없이 벌어지는 폭력의 구조는 현실의 한 단면을 비춘다. 거기에는 사회를 향한 풍자가 자리잡고 있다.

2004년 영화진흥위위회 시나리오 공모 최우수작을 '가발'로 데뷔한 원신연 감독이 풀어냈다.

거친 입버릇과 극단적인 폭력성향의 봉연을 소름끼치게 소화한 이문식과 함께 광기어린 바보연기를 천연덕스럽게 선보인 오근 역의 오달수, '넘버 3'이후 가장 인상적인 악역을 소화화 한석규, 그리고 이병준, 차예련, 김시후 등 출연배우의 열연이 한 장면씩을 채우며 극의 완성도를 높여준다. 115분. 18세 이상 관람가. 31일 개봉.

최두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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