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노무현 당' 생길 가능성?…선거후 전망

지방선거 이후 정치권 '지각변동' 올까?

5·31 지방선거가 31일 드디어 막을 내렸다. 여야 정치권은 이날 13일간의 법정선거운동을 모두 마치고 초조하게 선거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이번 지방선거는 여느 선거와 달리 그다지 여론의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선거 전부터 굳어진 판세 때문에 싱거운 한판으로 결론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치권의 관심은 온통 선거 이후의 정국 추이에 쏠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상되는 선거 참패 후 여당의 분열과 새판짜기, 선거에서 완승을 거둔 한나라당의 향후 당내 대권경쟁 등에 정치권의 관심이 빠르게 이동할 것이 분명하다. 선거 이후 진행될 정치권의 지각변동 시나리오를 정리해 본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통합론 급물살 탈 듯=역대 선거에서 집권여당이 이번 선거에서처럼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경우는 찾아 보기 어렵다. 따라서 곧바로 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론으로 당은 극도의 분열상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선거과정 중 정동영 의장의 '민주대연합론' 때문에 친(親)노직계와 당권파 간에 한 판 격돌을 벌였기 때문에 양측의 재격돌은 시간문제다.

분명한 것은 정 의장 발언으로 표면화한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통합 문제를 놓고 벌어질 당내 갈등이다.

친노직계를 제외한 여당 내 호남 국회의원들과 전통 민주당 세력은 한나라당의 재집권을 막기 위해서는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통합만이 살 길이라는 점을 누차 강조해왔다. 일종의 '서부벨트 통합론'으로,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서는 호남표와 '평화민주세력'의 결집이 필수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 정동영 의장은 없다. 정동영 의장을 압박해 통합을 추진한 후 대선후보 지지도에서 수위를 달리고 있는 고건 전 총리를 영입한다는 것 이 시나리오의 핵심이다. 이 경우 영남과 호남 모두에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하는 정 의장은 당연히 대권 경쟁 반열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같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 통합론은 친노직계 의원들 반발을 살 것이 분명하다. 친노직계들의 경우 민주당을 분당해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책임이 있기 때문에 재통합이 실현될 경우 찬밥 신세를 면할 길이 없다.

◆노무현 대통령 탈당할까=선거 이후 열린우리당이 분열의 길을 걸음에 따라 노무현 대통령도 선택의 순간을 맞게 될 것이 분명하다. 여당 내에서 선거 패배 책임론이 불거지면 노 대통령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오히려 노 대통령에게 직접 책임을 물을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여당 내에서 친노직계 의원들이 고립되는 사태가 생길 경우 노 대통령은 선택의 순간에 쫓길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노 대통령이 선택 가능한 시나리오는 두 가지가 된다. 하나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제스처를 또 다시 취한다는 것이고 다른 경우는 여당을 탈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대연정'을 내걸고 여당을 탈당할 가능성이 높다.

열린우리당이 분열의 길을 걸을 것이 뻔한 상황에서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야당의 협조를 끌어내는 방안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작년 대연정 제안 때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이 경우 열린우리당 내 친노직계 의원들도 노 대통령과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당' 생길 가능성도=노 대통령이 탈당할 경우 동반탈당하는 친노직계 의원 30여 명으로 새로운 여당이 탄생할 가능성도 있다.

어차피 열린우리당 내 호남 의원들을 중심으로 민주당과의 통합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에 이 기회에 아예 딴 살림을 차린다는 것이다. 민주당과의 통합파들이 여당 내에서 지속적으로 실용주의 노선을 주장해 정부 여당의 개혁작업에 발목을 잡아왔기 때문에 '분당'이 차라리 낫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그럴 경우 자신들 입맛에 맞는 개혁작업에 속도를 낼 수도 있고 임기말 국정운영에 탄력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최근 청와대나 내각 인사에서 '코드인사'를 계속해온 것도 이같은 시나리오를 가상한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에서 문제는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 당'의 대권 후보는 누구냐는 것이다. 정동영 의장의 민주대연합론에 반기를 들었던 친노직계들은 민주당 통합파의 고 전 총리 영입론도 결사 반대하고 있다. 고 전 총리를 통해 정권을 재창출해봐야 노 대통령을 보호해준다는 보증도 받을 수 없는 만큼 차라리 독자의 길을 걸어 '작고 강한 야당'도 불사한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노 대통령과 한나라당 이명박, 손학규 연대 가능성=가능성이 낮은 경우지만 최근 들어 부쩍 거론되는 시나리오다.

한나라당은 선거 이후 곧바로 대권후보 경쟁에 돌입할 것이 분명한데, 현재로선 박근혜 대표가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밖에 없다. 특히 박 대표는 이번 선거유세 도중 피습해 대중적 인기에 동정여론까지 얻어 상종가를 구가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추세라면 한나라당의 대권후보는 박 대표가 될 것이 뻔하다는 전망이 많다.

이럴 경우 이명박 서울시장과 손학규 경기도지사는 설 자리를 잃게 된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이 시장이 한나라당 대권경쟁에서 이탈해 노 대통령과 손을 잡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보·혁 연대' 성격을 띨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시나리오는 '노무현 당'이 대선에서 필패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야당의 분열을 이용해 재기를 모색한다는 취지다. 이 연장선에서 이 시장의 신당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손 도지사와의 연대설은 최근 노 대통령이 손 도지사의 외자 유치를 칭찬했고 한나라당 인물이지만 '코드' 면에서 일치하는 점이 많기 때문에 나온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친노직계 의원들 중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들 중 가장 경쟁력 있는 후보는 손 도지사라며 우호적인 제스처를 취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하고 있다.

◆개헌론 재차 점화될 수도=지방선거 후 정계개편이 거론되면 개헌론은 필수다. 열린우리당 측에서 벌써 정동영 의장이 "내년이 개헌의 적기"라고 말한 적이 있고, 이같은 고질적 지역구도 정치의 돌파구는 개헌밖에 없다는 소리도 들린다. 여당 관계자도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지면 개헌이란 돌파구 외에는 없다. 이를 통해 정치판을 흔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개헌론이 갖는 파괴력을 감안하면 선거 참패 후 혼란을 겪을 게 뻔한 여당으로서는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 없다. 각 정치세력 간의 연대를 위해 부통령제 도입도 가능하고 내각제 개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 내에서도 개헌논의가 불가피하다고 보는 시각이 많기 때문에 점화시기나 방법에 따라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반대다. 현 헌법으로도 집권이 가능한 상태에서 괜히 여권의 개헌논의에 틈을 열어줄 이유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더욱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거두는 상황이기 때문에 집권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고 판단하고 있어 개헌논의는 씨가 먹히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박 대표가 "개헌은 다음 정부에서 하는 것이 좋다."며 쐐기를 박은 것도 이같은 계산에서 나온 발언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내 친박(親朴)과 반박(反朴) 간 세력균형 깨질까=한나라당에서는 다음달 박근혜 대표가 당 대표직에서 사퇴하고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도 6월 말로 임기를 마치기 때문에 대권 경쟁이 본격화할 전망이다. 7월에 있을 전당대회는 이들 대권주자들의 한판 승부의 장이 될 것이 분명하다. 대권주자들은 당권주자들을 상대로 줄세우기를 시도할 것이 분명하고 의원들의 이합집산도 가속도를 더할 것이다.

그러나 종전까지 뚜렷했던 '친박'과 '반박' 간의 대결 양상은 퇴색할 것으로 예측된다. 이번 선거 승리를 계기로 박 대표의 당내 위상과 대권주자로서 입지가 더욱 굳어졌기 때문이다.

종전까지 박 대표 반대쪽에 서 있던 소장파들이 박 대표에게 재차 손을 내밀 가능성도 있고, 반박 그룹의 결집도가 서서히 떨어질 가능성도 있다.

반대로 이명박 서울시장은 박 대표 반대세력을 결집하는데 전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박 대표와의 경쟁에서 더 이상 밀리지 않기 위해서는 당내 저변을 더욱 확대하고 공고히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소장파나 서울 수도권 국회의원들 외에도 영남권 국회의원들에 대한 이 시장의 구애가 본격화할 것이 분명하다. 7월 전당대회는 양측이 본격적으로 격돌하는 공식적인 첫 자리가 될 것이다.

이상곤기자 lees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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