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문화는 당대의 역사와 전통을 생생하게 읽게 해준다. 실록(實錄)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고려는 500여 년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온 왕조였지만 멀게 느껴지는 까닭은 '왜'인가. 당대에 기록된 1차 사료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고려실록'이 있었으나 전하지 않는다. '고려사' '고려사절요' 등도 조선시대에 편찬된 2차 사료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은 1차 사료이므로 당대의 역사를 명명백백하게 말해주고 있다.
쪊국보 제151호인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까지 472년간 조선의 역사적 사실을 2천77권으로 나눠 담았다. 임진왜란'병자호란 등으로 소실'강탈되기도 했으나 지금까지 보존되고 있다. 1997년 유네스코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이 실록의 일부인 오대산 사고(史庫)본만 1913년 일본의 데라우치 마사다케 초대 조선총독에 의해 강탈, 관동대지진 때 소실된 것으로 알려졌으나 도쿄대가 보관해 왔다.
쪊서울대는 도쿄대가 어제 이 실록 오대산 사고본 47책을 규장각에 기증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와 합의하게 됐다고 밝혔다. 강탈→소실→반환 등 우여곡절을 겪은 이 실록은 우리의 피약탈 문화재 수난사의 한 전형을 보여주면서 제자리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올 초부터 반환운동을 주도한 '실록환수위' '실록 되찾기 국회의원 모임'등의 역할도 컸다고 한다.
쪊일본은 1905년에 약탈했던 임진왜란 당시 조선 의병의 승전비인 '북관대첩비'를 지난해 10월에 반환한 바 있다. 이번이 두 번째 반환이며, 이를 계기로 우리 문화재 반환운동은 거세질 전망이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 조선 말기에 국운이 쇠하면서 우리 문화재는 도굴과 약탈로 전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네스코도 약탈한 문화재가 확실한 것은 본국으로 반환하는 걸 원칙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쪊이번 도쿄대의 반환은 우리 요구에 거부 명분이 궁했기 때문인 것 같다. 지난 3월 월정사를 중심으로 하는 불교계와 정치권 인사들이 반환운동을 펼치며 협상을 벌인 뒤, 가까스로 기증 형식으로 반환된 셈이다. 문화재청은 미국'영국'프랑스 등 세계 20여 나라에 7만 4천434점, 그 중 일본엔 무려 3만 4천331점의 우리 문화재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 우리 문화유산들이 모두 되돌아올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태수 논설주간 tspoet@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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