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 궁여지책 당선자와 한나라당에게

예상대로였다. 이변은 없었다. 한나라당 압승, 여당의 대참패로 끝난 5'31지방선거의 또 다른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지방자치의 질식'이 아닐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많은 이들이 물었다. '누굴 찍어야 하느냐고?' 모범 답안은 이미 나와 있었다. '정책과 인물을 꼼꼼히 살펴보고 선택한다'. 하지만 애초부터 정책과 인물은 없었고 있어도 소용이 없었다. 중앙정치의 패거리 정치 놀음에 지방자치까지 오염돼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차차선에도 끼이지 못하는 '그 나물에 그 밥' 내지 궁여지책 후보들이 대거 당선됐다. 더욱이 이들을 뒤에서 조종하며 지방정치를 쥐락펴락할 중앙정치권으로 인해 지방자치의 질식은 불가피해졌다.

압승에도 불구, 한나라당은 몸을 바짝 낮췄다. 아마 잘나가다 엎어진 적이 많았기 때문일 게다. 한나라당 텃밭임이 더욱 확고해진 대구'경북지역에서도 그럴 것인지 의문이다. 축하는 못해줄망정 고춧가루를 뿌리느냐고? 몰라서 묻는가. 한나라당은 수도권 등 경쟁이 치열한 곳은 후보를 고르고 골랐다. 반면 노골적인 지역주의 투표 성향에 기대어 대구'경북지역에선 고르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자연 함량 미달자들이 대거 후보가 됐고 당선됐다. '묻지마 투표'는 '아무나 공천'과 '누구나 당선'이란 결과를 초래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리더십 부재로 지역 발전이 거듭 후퇴하고 있는 대구'경북에 자치 실종과 함께 이중의 질곡이 될 전망이다.

지난 10여 년간 한나라당은 적어도 대구'경북지역에선 압도적 지지를 받는 '유일 여당'이었다. 그렇다면 한나라당이 대구'경북지역에서 내세울 만한 업적이 있는가. 없었다. 추궁하면 변명으로 일관했다. 야당 지역이어서 중앙정부가 홀대한다고 하면 면죄부가 됐다. 과연 그런가. 같은 야당 지역이면서도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부산 등 다른 지역의 성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모든 원인은 이 지역 출신 국회의원들을 비롯한 중앙정치권이 말 잘 듣는 장삼이사(張三李四)들을 내세워 선거에 이용만 했지, 진정 지역 발전을 추진할 만한 인물은 외면한 때문이다.

최고의 인재들을 내세워 경쟁해도 수도권에 밀리는 판에 유권자 평균 수준보다 자질이 떨어지는 인사들로 경쟁력이 생길 수 있겠는가. 특히 대구는 젊은층이 일자리를 찾아 수도권과 부산권으로 떠나면서 인구 기준으로도 제3의 도시에서 제4의 도시로 확실히 전락했다. 정치사회 의식의 퇴영이 도시발전마저 퇴조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무나 공천'과 '누구나 당선'의 부작용은 고스란히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간다. 중앙정치권은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책임질 생각도 없다. 따라서 국회의원과 대통령 선거의 예비선거 내지 '조무래기 선거'로 전락한 지방선거를 제 위치로 돌리는 게 급선무다. 중앙정치의 볼모에서 벗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묻지마 투표'라는 지역주의 투표 양상도 타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대구'경북을 비롯한 비수도권의 발전은 요원하다.

'유권자에 대한 무례'를 저지른 정당에는 비난과 야유가 제격이나 빈정대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궁여지책 당선자도 배척하거나 비분강개해봐야 지역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궁여지책 당선자와 한나라당에만 비난의 화살을 돌릴 수도 없다. 정치 수준은 유권자가 결정한다. 대구'경북 정치가 변화하지 않고 지역발전이 정체된 것은 모두 지역 유권자들의 책임이다. 이제 유권자들은 비록 궁여지책 당선자라 할지라도 격려와 함께 그들이 제대로 지방경영에 나서도록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당선자들도 취임까지 남은 한 달 동안 지역발전의 청사진을 차분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여야 정당들도 '풀뿌리 선거'가 아니라 '풀 뽑기 선거'가 돼버린 지방선거를 지방자치 취지에 맞게 되돌려야 한다. 그것은 정당공천 배제다. 특히 이번 지방선거에서 압승한 한나라당이 앞장선다면 지방자치가 한층 성숙될 수 있을 것이다.

조영창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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