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열린우리당 '비대위 체제' 구성 난항 예고

창당 이래 3번째 비대위..김근태 옹립 주목

'열린우리당호'가 5.31 지방선거 참패 이후 방향타를 잃고 격랑 속에서 표류하고 있다.

정동영(鄭東泳) 전 의장에 이어 4일 김혁규(金爀珪) 조배숙(趙培淑) 최고위원이 사퇴함에 따라 2003년 11월 창당 이래 9번째로 새 지도부를 구성하게 된 것.

당 중진급 의원들이 나서서 "남은 지도부가 당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며 극구 만류했지만, 두 최고위원의 사퇴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에 따라 우리당은 당장 비상대책위를 구성해야 할 처지지만, 이마저도 당내 계파 및 역학구도가 복잡하게 얽히면서 이견이 표출되고 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전격 사퇴 배경 = 우리당이 환골탈태하기 위해선 현 지도부의 총사퇴가 불가피하다는 게 그 이유이다.

"차순위 당의장 승계와 지도부의 이벤트성 정치행보 등과 같은 그동안의 답습으로는 민심을 되돌릴 수 없다"(김혁규), "임시지도체제를 통해 원점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한다"(조배숙)는 것이다.

전날 중진의원들에 이어 정동영 전 의장이 이날 낮 두 최고위원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퇴를 만류한 뒤 '김근태 최고위원 당 의장직 승계'의 불가피성을 거듭 설득했으나 생각을 바꿀 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 안팎에선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김두관(金斗官) 최고위원과의 불화가 두 최고위원의 사퇴에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김두관 최고위원이 선거 직전 정동영 전 의장에게 "당을 떠나라"고 직격탄을 날린 뒤 지도부 사이에서 김 최고위원에 대한 비토 분위기가 강했다는 후문이다.

지난 1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두관 최고위원과 염동연(廉東淵) 사무총장이 선거책임론을 놓고 한바탕 설전을 벌인 것도 이를 반증하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두 최고위원의 사퇴를 막기위해선 김두관 최고위원이 먼저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당내 목소리가 높았으나, 김 최고위원이 이날 오전 사과성명만 발표하자 두 최고위원이 결국 '사퇴카드'를 꺼내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물론 김혁규 최고위원은 회견에서 "특정인에 대한 비토는 아니다"라고 말했으나 '인과관계'를 연상하는 시각은 당내에 팽배하다.

여기에 2.18 전대 경선과정에서 나타난 계파 또는 후보간 연대 구도 역시 어느 정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전대 당시 '정동영-김혁규'와 '김근태-김두관' 조합이 대립전선을 형성했던 만큼 김혁규 최고위원측으로서는 '김근태-김두관' 라인이 당의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는 비대위 체제로 가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해석이다.

김 최고위원은 이 같은 해석에 대해 "김근태 최고위원을 존경한다"면서도 "지금은 누가 당을 맡느냐보다는 당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하다"고 일축했다.

▲후임 지도체제 전망 = 김근태(金槿泰) 최고위원의 당의장직 승계가 사실상 어려워짐에 따라 비상대책위 체제로 운영될 전망이다. 비대위 구성이 현실화될 경우 우리당은 창당 이래 3번째 임시지도체제가 들어서게 된다.

첫 비대위는 2004년말 국가보안법 등 이른바 '4대 입법' 처리 실패를 책임지고 당시 이부영(李富榮) 의장 등 지도부가 총사퇴하자 임채정(林采正) 의원을 위원장으로 구성됐다.

또 지난해 10.26 국회의원 재선거 패배에 따라 문희상(文喜相) 당시 의장 등 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원내대표였던 정세균(丁世均) 현 산업자원부 장관을 중심으로 2차 비상집행위가 운영됐다.

우리당은 오는 7일 최고위원회의와 중앙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를 잇따라 열어 비대위 구성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그동안 관례에 비춰 김한길 원내대표와 16개 시.도지부장단이 '비대위 인선위원회'를 꾸려 비대위원장과 위원들을 구성한 뒤 중앙위원회의 인준을 받는 형식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선출된 비대위원장은 내년 3월 전당대회 전까지 정동영 전 의장의 임기를 채울 것으로 보인다.

현재 당 안팎에선 2.18 전당대회에서 차순위 득표한 김근태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아 임시지도체제를 끌고가야 한다는 의견이 김근태계 일부와 정동영계, 중진의원들 사이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김 최고위원이 당 의장직을 자동승계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던 만큼, 인선 과정에서의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위해선 비대위원장을 맡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김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당을 수습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변함이 없다"면서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도부가 5.31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마당에 현 지도부의 일원이 비대위원장을 맡는 것은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조배숙 최고위원은 "사퇴한 지도부의 한 분이 당 수습을 맞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이 현 시점에서 당 수장직에 오를 경우 "국민에게 진정으로 반성하는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따라서 6선인 김원기(金元基) 전 국회의장이나 2002년 지방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내 '특대위'를 구성해 위기를 돌파했던 조세형(趙世衡) 상임고문 등 중량감있는 중진들을 추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김혁규 최고위원도 "당내외에서 존경받는 중립적인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소수 의견이긴 하지만 정동영계로 분류되는 김한길 원내대표를 비대위원장으로 내세워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김 원내대표 본인이 부정적인 입장인 데다 김근태계측도 이를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연합뉴스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