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이와 함께 출근길을 나섰다. 학교 앞에 아이를 내려주고 가려는데 앞에 선 차가 깜박이를 켜고 진입하려는 순간 뒤에 있던 차가 갑자기 앞으로 나오며 간격을 좁히며 들어갈 공간을 내주지 않는다. 뒤쪽에 차량이 계속 밀려들자 앞차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깜박이를 넣고 들어가려고 시도를 했으나 그 뒷차는 더욱 거칠게 밀어붙인다.
진입하려던 운전자는 창문을 내리고 손을 내밀어 양해를 구해봤지만 짙게 선팅 된 창문 안으로는 사람의 그림자는 보이지도 않았다. 두 차가 실랑이를 벌이더니 결국 진입을 막던 차가 경광등을 켜고 멈춰섰다.
앞차를 들이박고 멈춰선 것이다. 차에서 내리는 운전자를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젊은 운전자일 것이라는 내 짐작과는 달리 선량(?)하게 생긴 50대 후반의 운전자가 상기된 얼굴로 내려섰다. 몇 사람의 운전자들이 뒤엉킨채 손을 휘저으며 언쟁을 벌이는 동안 뒤쪽으로는 차가 꼬리를 물었다.
손톱만큼의 여유도 없는 숨막히는 아침이었다. 우리는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피해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꼴을 못본다. 오히려 그를 깍아 내리고 내가 올라서야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의 사회병리현상이 아닐까. 가슴에 담겨있던 울분이 불특정한 상대방에게 표출되는 것이다.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이 죽이고 싶을 만큼 밉고, 자신의 빚 때문데 수원성을 불태우기도 한다. 모두가 악한 사람들이 되어가고 있다.
자기의 어려움이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런 사회병리 현상의 형성에는 정치인들의 잘못도 크다. 모든 공은 자기가 한 것이고, 허물은 모두 상대방이 잘못해서 생긴 거라고 말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습성이 아닌가.
신문과 방송에서 늘 이를 보고 듣는 국민들이 자신도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아, 내가 못사는 것이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 때문이고, 그 사람들이 없어져야 내가 잘 살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사회는 기회의 균등이 있는 것이지, 분배의 균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공부를 잘 하는 학생들은 자기가 열심히 한 결과이지, 잘못된 방법으로 점수를 잘 받아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지금 기회의 균등보다 분배의 균등에만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한 때 종교계를 중심으로 '내탓이오' 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이제부터 다시 '내탓이오' 운동을 벌여야 할 판이다. '모두가 남의 탓이오'라고 이야기 하는 사이 우리는 스스로도 모르게 악해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시간이 하루 1분이면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웃을 위해 상대방을 위해 1분씩이라도 양보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조그만한 양보가 아쉬운 아침이었다.
박재우(경북대 성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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